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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베존더스 Dec 04. 2021

맏이라 얼마나 힘들었니

첫아이는 결혼 후 2년 만에 우리에게 찾아왔다. 기다리던 소식이라 기쁨은 배나 더 했다. 나는 클라리넷을 전공해서 인지 태교까지 클래식으로 하고 싶지 않았다. 엄마가 즐거워야 아가도 즐거운 거라며 예능 프로를 즐겨 봤다. 아직 학생이었던 남편은 아침 일찍 공부하러 나가면서 내 배 위에 헤드셋을 끼웠다. 남편이 없는 동안 내가 클래식을 듣지 않는다는 걸 남편은 잘 알고 있었다. 아기에게라도 들여주고 싶어 했다. 남편은 저녁에 돌아와 피곤할 법도 한데 하루도 빠짐없이 내 배를 쓰다듬으며 동화책을 읽어주었다. 가끔씩 노래도 불러주었다. 성악 전공인 아빠의 목소리는 아기에게 최고의 태교였다.


지극정성 속에 첫아이는 태어났다. 뱃속에서 꼬물거리던 작은 생명을 실제로 마주하니 눈시울이 뜨거웠다. 남편과 똑 닮은 외모에 눈을 떼지 못했다. 첫아이의 성장과정은 모든 게 다 처음이고 신기했다. 뒤집던 날. "엄마"라고 부르던 날, 한 발자국을 내딛던 날의 감동을 빠짐없이 영상에 담았다. 큰 아이는 5년 동안 사랑을 독차지했다.  첫애는 육아 서에 나오는 정석 그대로의 아이였다. 엄마에게 집착이 심했지만 잘 놀아 주면 조용했다. 저지레도 없고 온순했다. 이따금씩 혼자 노는 첫째의 뒷모습을 보면 동생을 만들어 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랜 기다림 끝에 둘째가 생겼다. 열 달이란 시간은 첫애 때 보다 더 빨리 지나갔다. 둘째를 낳아 품에 안고 집으로 오던 날 조용했던 집에는 아기 울음소리로 가득 찼다. 밤낮없이 우는소리에 첫애는 적응해야 했다. 5년 만에 생긴 동생에게 엄마를 뺏겨야 했던 첫애는 엄마에게 더 집착했다. 아빠가 씻겨주고 옷 갈아입혀도 되었는데. 무조건 엄마가 해야 한다며 우겼다.


귀가 밝고 예민한 둘째를 재우려면 오랜 시간이 걸렸다. 첫애는 내 옆에서 기다리다 웅크려 잠들곤 했다. 아이의 모습을 보며 마음이 욱신거렸다. 첫째에게 동생을 선물하고 싶었는데 오히려 둘째의 존재가 아이에게 아픔이 되는 건 아닌지 걱정됐다. 나이 차이가 나는 둘째의 신생아 육아는 다시 시작이었다. 내 몸은 항상 고단했다. 힘든 엄마를 위해 큰 아이는 우유병, 기저귀를 가져다주었다. 작은 고사리 손으로 빨래도 갰다. 엄마의 마음을 누구보다 알아주는 첫째였다.


둘째가 돌이 지나며 첫애의 장난감을 망가뜨리기 시작했다. 첫째는 속상해서 우는 날이 많았다. 더 이상 동생을 원하지 않았다. 둘째를 낳고 3년 만에 큰 아이의 의사와 상관없이 동생이 또 생겼다. 두 번째 동생은 여자 아이이지만 ‘다운 천사’였다. 검사받아야 할게 많은 셋째는 병원에 자주 가야 했다. 나는 앞으로 아이 셋을 데리고 해낼 수 있을지 깊은 한숨이 나왔다.


내 마음에 여유가 없다 보니 첫째가 전보다 더 말을 잘 듣길 바랐다. “네가 잘해야 동생도 잘하지”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다. 혼을 내더라도 더 엄하게 혼냈다. 나의 첫사랑 첫아기는 무거운 짐의 무게를 감내하고 있었다. 첫째는 둘째의 저지레를 보고 더 부추겼다. 심지어는 포스트잇 메모지 100장을 하나하나 뜯어내 이곳저곳에 붙였다. 붙이기만 했다면 다행이었다. 그 위에 사인펜으로 그림을 그렸다. 포스트잇을 때는 곳곳마다 사인펜 자국이 선명했다. 그뿐인가. 벽에 그림 그리는 둘째를 말리기보다는 자기가 더 멋지게 그림을 그렸다. 육아 서에 나오는 정석의 아이는 내면에 담고 있는 화를 풀어내고 있었다.


삼 남매 육아는 매일매일이 극기 훈련이었다. 밤낮없이 수유해야 하는 셋째, 아직 기저귀를 떼지 못한 둘째였다. 둘째는 동생이 태어나도 우유병을 끊지 못했다. 셋째가 우유를 먹으면 둘째도 함께 우유를 먹으려 했다. 아직 어려서 말귀를 못 알아듣는 둘째, 아가라 울음으로 표현하는 셋째이다 보니 말귀를 알아듣는 첫애에게 바라는 점이 많았다. “혼자 할 수 있는 일은 혼자 해!”라며 강요했고,  둘째 기저귀 가는 동안 셋째 옆에 가서 잠시만 있어 달라 했다. 남편이 일 나가고 없는 시간에는 큰 아이에게 육아 도움을 요청하기도 했다. 기저귀를 가져다 달라고 했으며 우유병을 싱크대에 가져다 놓아 달라고 했다.


어느 날 문뜩 바라본 첫애의 얼굴에는 슬픔이 가득했다. 내 마음 저 깊숙한 곳에서 뜨거움이 올라왔다. 아이를 꼭 끌어안아주었다. 엄마의 따뜻한 온기에 아이는 흐느꼈다. '맏이라 얼마나 힘들었니. 그동안 너의 작은 마음이 얼마나 아팠을까.' 아이를 더욱더 내 품 안으로 끌어안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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