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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베존더스 Jan 08. 2022

여리고 작았던 두 아들에게

240mm. 큰아들 신발 사이즈다. 두 달 후면 만 11살이 되는 아이와 마흔 넘은 내 발 크기가 같아졌다. 이제는 내 운동화를 새로 사면 아들에게 뺏길 것 같다. 키는 아직 나보다 14센티미터 작지만 한창 성장기인지라 아들은 금방 나를 따라잡을 기세다. 키가 큰 만큼 듬직해진 아들은 동생들의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준다. 셋째가 까치발을 들고 손에 닿지 않는 물건을 꺼내려하면 성큼성큼 다가가 꺼내 준다. 둘째가 특정 단어를 독일어로 어떻게 표현해야 하는지 궁금해하면 이해하기 쉽게 설명해 준다. 때로는 동생들이 엄마 말을 듣지 않으면 “엄마가 얼마나 힘든데 말 좀 들어라”라며 훈계한다. 둘째는 작년 가을에 초등학교에 입학했다. 큰아이는 둘째에게 “형처럼 힘들지 않으려면 지금부터 공부해라”라고 경험담을 말해준다. 


둘째는 선망의 대상인 형 말이라면 바로 듣는다. 형이 하는 게임은 자기도 해야 하고, 형이 입는 옷도 똑같이 입어야 한다. 형 바라기 둘째다. 언제 이렇게 큰 걸까. 문득 고개를 들어보니 두 아들이 어느새 쑥 커 있는 느낌이다. 믿기지 않는다. 다희를 낳았을 당시 큰아들은 만 6세였고, 둘째는 만 2세였다. 내 마음에 여유가 없던 시절이었다. 다희를 데리고 피검사는 물론 청력, 갑상선, 성장 발달 검사를 받아야 했다. 다희는 자주 아파 입원과 퇴원도 잦았다. 난 항상 피곤했다. 그리고 언제 끝날지 모르는 병치레가 마음을 불안하게 했다. 그러다 보니 두 아들에게 밝고 씩씩한 엄마가 되어주지 못했다. 시간에 쫓기듯 익숙하지 않은 현실에 적응하며 살아내기 바빴다.


그때를 생각하면 ‘다운증후군’ 다희를 돌보느라 두 아들에게 소홀했다는 걸 깨닫는다. 아직 어렸던 두 아들을 떠올리니 마음이 아리다. 다시 돌아간다면 난 두 아들을 숨도 못 쉬게 꼭 끌어안아 주고 싶다. ‘다운증후군’을 가지고 태어난 동생에게 엄마의 관심과 사랑을 빼앗겨야 했던 두 아들에게 미안하다. 불안해하는 나를 보며 얼마나 힘들었을까?


병원에 가야 하는 내 바짓가랑이를 붙들고 가지 말라 하던 첫째 모습이 떠오른다. 그 마음을 어루만져 주지 못했다. 주워진 당장의 상황을 해결하기 바빴다. 후회된다. 엄마에게 사랑받고 싶었던 둘째는 내가 자주 집을 비우면서 웃음을 잃어갔고 어두워져 갔다. 왜 조금 더 보듬어 주지 못했을까? 자책한다.


둘째는 호기심이 많고 궁금한 게 많았다. 이것저것 물어보는 둘째에게 건성건성 대답했다. 아이는 성의 없는 엄마의 대답에 실망했다. 아이의 눈을 마주 보며 살뜰히 대해 줄걸. 큰아이도 불만스럽기는 마찬가지였다. 큰아이는 친구를 데리고 집에 와서 놀고 싶어 했다. 난 마음의 여유도 없었고 아이가 셋이다 보니 누가 오는 게 부담됐다. 서운했을 큰 아들의 마음을 모른 척했다. 되려 첫째에게 “엄마를 누구보다 더 이해해야지”라며 다그쳤다. 그때 조금만 여유를 가졌더라면. 어찌 됐건 시간은 지났을 텐데 왜 그리 힘들어하며 아이들을 있는 그대로 사랑해주지 못했을까.


나도 여느 엄마들과 다를 것 없이 아이 한 명 한 명에게 관심을 가지며 살뜰히 챙겨 주고 싶었다. 그러나 동시다발적으로 나를 찾는 아이들 앞에서는 속수무책이었다. 동생이 자기 책가방을 뒤져서 교과서가 없어졌다며 울상이 되어 엄마를 부르는 첫째. 화장실에서 똥 다 쌌다며 닦아달라는 둘째. 낮잠 자다 깨어나 우는 셋째. 내가 처한 현실에서는 마음만큼 몸은 따라가지 못했다. 때로는 삶이 버거워 여리고 작았던 두 아들에게 짜증냈다. 소리 지르는 일도 다반사였다. 그러고 나면 나 자신이 원망스럽고, 자괴감에 시로잡혔다.


아이들은 얼마나 마음이 아팠을까? 그럼에도 아이들이 건강히 자라난걸 보면 감사하다. 지금 아이들 모습도 과거가 되겠지 라는생각에 잠시 아이들을 바라다본다. 과거로 돌아갈 수 없기에 지금 아이들에게 진심으로 사랑표현을 한다. 엄마의 관심과 사랑이 그리웠을 두 아들을 꼭 끌어안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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