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베존더스 Feb 18. 2022

코로나로 이산가족 되다.

아직 잠자리 독립을 하지 못한 셋째는 나와 함께 잔다. 밤마다 이불 밖으로 나와 차가워진 아이의 발을 다시 넣으며 만지작거렸다. 작은 발이 움찔했다. 더 만지다가는 깨울 것 같아 조심스레 놓았다. 엄마의 손을 찾기라도 하듯 발이 꼼지락거렸다. 따뜻한 온기를 느끼고서야 잠잠했다.

며칠 동안 셋째의 발을 만질 수 없었다. 코로나에 걸린 나와 둘째만이 남동생 네로 갔다. 남동생 부부도 이미 코로나 양성이라 그 집에서 만큼은 마스크 없이 자유로울 수 있었다. 엄마를 차지한 둘째의 표정은 둥실둥실 구름을 탄 것처럼 보였다. 둘째는 수십 번 ‘엄마’를 불렀다. 색칠공부도 엄마와 함께 하길 원했다. 밥 위에 반찬을 올려주길 기다렸다. 온전히 둘째에게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바뀐 잠자리에 둘째는 한참을 뒤척였다. 한 시간 가량이 지나고서야 새근새근 소리가 들려왔다. 어두운 방안에 달빛이 스며들며 둘째의 발이 보였다. 따뜻한 이불속으로 발을 넣어 주었다. 셋째보다 몇 배는 컸다.

'언제 이렇게 큰 거지?' 둘째에게도 꼬꼬마 시절이 있었는데. 아픈 셋째를 돌보느라 앞만 보고 달려온 사이 많은걸 놓쳤다는 생각이 들었다.


첫애를 낳고 5년 만에 얻은 둘째는 엎어져 울어도 예쁘고 뒤집어져 울어도 예뻤다. 저지레로 온통 집안을 엉망으로 만들어도 귀여웠다. 어느 순간 뒤로 물러나야 했던 둘째 생각에 심장이 온통 뻐근해지는 것 같았다.

다른 아이도 아니고 둘째가 코로나에 걸려야 했던 이유가 나와 함께 하기 위함이 아니었을까? 코로나로 몸은 아프고 힘들었지만 둘째와 함께하는 시간에 감사했다. 이틀 동안 둘째와 먹고 자며 건강해져 갔다. 그 사이 첫째는 생일을 맞았다. 떨어져 있어 챙겨주지 못하는 마음이 안타까웠다.


첫째에게서 페이스톡이 걸려왔다. 첫째의 눈망울이 붉게 번졌다. "울 듬직이 왜 그래? 생일인데 엄마가 없어서 그래?" 대답 대신 눈물만 뚝뚝 흘렸다. 마음이 무거웠다. 초등학교에서의 마지막 생일이었던 첫 째를 위해 생일 파티를 준비했었다. ‘무산된 생일 파티에 많이 속상했나?' 첫째의 마음을 짐작할 뿐이었다. 남편은 첫째에게 핸드폰을 받아 들고는 “열나기 시작했어 엄마가 보고 싶데” 라며 첫째의 심정을 전달했다. 눈시울이 젖어들었다.


그날 밤 막내도 열이 났다. 남편은 두 아이를 데리고 코로나 검사소로 갔다. 세 명 다 양성이었다. 차라리 잘됐다는 생각에 마음이 홀가분했다. 둘째의 손을 잡고 한 달음에 집으로 돌아갔다. 나를 보자마자 안겨서 우는 첫째에게 "이젠 괜찮아 모두 같이 있자" 라며 다독였다. 내게 안긴 셋째는 몇 번이고 얼굴을 비비며 눈을 마주쳤다. 고생했던 남편도 생일에 함께 할 수 없어서 서운 했던 첫째도, 엄마가 보고 싶었던 막내도 안정을 찾아갔다.

엄마와 떨어져 있던 만큼 보상을 받으려는  셋째는 껌 딱지가 되어 한시도 떨어지지 않았다. 엄마와 함께 자겠다며 파고드는 삼 남매 덕에 침대가 좁았다. 날이면 날마다 오는 것도 아니고 함께 자자. 손바닥만한 셋째의 발부터 나와 발 사이즈가 같은 첫째의 발. 그리고 오래간만에 만져보았던 둘째의 발 까지. 세 아이의 발을 동시에 바라보는데 왠지 뭉클했다. 오늘만큼은 숙면할 것 같다.



매거진의 이전글 여리고 작았던 두 아들에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