곰 중에서도 상곰인 며느리
다섯 식구가 한국에 가려니 큰 트렁크 가방만 4개였다. 가방 4개의 무게 무려 115 킬로그램이었다. 가방만큼이나 내 마음도 무거웠다. 친정이 독일인 난 한국 방문 시 시댁에 머물러야 했다. 결혼한지는 14년이 조금 넘었다. 결혼 년 수와는 상관없이 해외 사는 며느리는 살을 부대끼며 살지 않은 시부모님이 여전히 어렵다. 가부장적인 시아버지는 표정이 없다. 정이 많지만 겉으로 표현하지 않는다. 입을 꾹 다문 표정은 언제나 한결같다. 기분이 좋은지 나쁜지 알 길이 없다. 반면 어머니는 솔직하다. 서운한 게 있으면 서슴없이 말한다. 자기 관리도 철저하다. 기상시간은 한결같이 5시 30분이다. 네일아트에 가서 손톱도 관리받는다. 또 얼마나 부지런 한지 한시도 가만히 있지 않는다. 뭐 하나 허투루 시간을 보내는 법이 없다. 심지어 아버님에게도 극진하다.
아버님은 그야말로 왕이다. 앉아서 "물!" 하면 어머님은 가져다준다. 반찬가게에서 반찬을 사는 법이 없다. 손수 다 만든다. 아침 식사 때 아버님이 ‘게장 먹고 싶어’라고 하면 어머니는 바로 만들어 저녁 식사 때 게장을 식탁에 올린다. 반면 며느리는 그러하지 못하다. 부지런하지 못한 며느리는 아이가 셋에 막내 ‘다운 천사’를 돌보는 것만으로도 버겁다. 남편까지 챙기다 보면 과부하에 걸려 로딩 중일 때가 많다. 그렇지만 한국에서 만큼은 어머니를 부지런히 따른다. 독일과 달리 습하고 더운 한국 날씨에 내 몸은 물 먹은 솜 마냥 무겁다. 무거운 몸을 정신력으로 버틴다. 며느리는 성격도 무뚝뚝하다. 싹싹하기라도 하면 좋으련만. 곰 중에도 상 곰이다. 눈치 빠르고 계획적인 어머니 마음을 잘 헤아리지 못한다. 그런 내게 남편은 눈치를 주지만 복잡한 수학 문제만큼이나 난 어머니 마음이 어렵다.
어머니는 스타일리시하다. 그날의 옷에 따라 가방도 다르게 든다. 가방도 셀 수 없이 많다. 벽을 가득 채운 붙박이 장에는 옷이 빼곡하다. 아이가 셋인 며느리는 기능성 옷을 선호한다. 유명 브랜드가 아니면 어떤가 입어서 편하면 장땡이지. 어머니는 그런 며느리도 좋은 옷을 입었으면 한다. 어느 날은 외출하는 어머니 옷 색깔까지 눈에 들어왔다. “어머니 입고 있는 옷이 예뻐요.” “너 줄까? 마음에 드는 거 골라가져.”라며 어머니는 며느리가 주는 걸 여우같이 잘 챙기길 바란다. 주시면 감사히 받지만 일부러 ‘주세요’ 라고는 하지 않는다. 어머님, 아버님은 결혼 14년 동안 단 한 번도 빠짐없이 두 달에 한번 소포를 보냈다. 그것만으로도 난 과분했다.
난 곰 같은 며느리라 눈치 빠르고 센스 넘치는 어머니는 내가 답답했을 거다. 하지만 무거운 곰의 몸으로 여우 흉내를 내야 했던 나도 못지않게 힘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