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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베존더스 Aug 12. 2022

한국에서 조차 나는 이방인이었다.

독일에서는 외국인으로 비자를 받으며 살아간다. 비자를 주는 이들은 어느 누구 하나 활짝 웃는 얼굴이 없다. 비자를 받기 위해 건넨 내 서류와 여권은 아무렇게나 내던져진다. 성난 컴퓨터 타자기 소리만 방안 가득 울려 퍼진다. 타자 소리가 멈추면 여권사진을 스캔하는 소리가 유난히 ‘위이잉’ 크게 들린다. 적막을 깨고 짜증 섞인 말투의 직원은 나에게 “지문 인식대에 두 번째 손가락을 올리세요”라며 말한다. 나는 분위기 탓에 괜히 마음이 작아진다. 독일에 살며 난민들처럼 거저 사는 것도 아니고 세금을 따박따박 내는데. 동양인이라는 이유로 이런 대우를 받아야 하니 화가 치민다. 나와는 달리 스웨덴 친구는 너무도 쉽게 비자를 받는다 심지어 관공서 직원이 친절하기까지 하단다. 차별받는 외국인의 삶은 녹록지 않다.


고단한 외국 삶에 한국 방문은 한줄기의 빛이다. 비자가 필요 없는  나라. 긴장된 근육을 잠시나마   있는 곳이다. 한국에서만 들을  있는 매미 우는 소리, 더위를 달래주는 시원한 소낙비. 어릴  즐겨 먹던 캔디 바를   가득 베어 물며 소낙비가 지나간  냄새를 맡는다. 잠시 쏟아진 비로 멈추었던 세상은 다시금 싱그럽게 움직였다. 창문 아래로 보이는 우산 접는 꼬마의 모습이 귀여웠다. 문뜩 어린 시절 동요가 떠올랐다. 옆에 아 있는 둘째에게 동요를 불러줬다. ‘이슬비 내리는 이른 아침에 우산 셋이 나란히 걸어갑니다. 빨강 우산, 파랑 우산 찢어진 우산.’ 둘째는 찢어진 우산 부분에서 까르륵 웃었다. 나의  추억을 고스란히 담고 있는 한국.


하지만 주거지가 한국이 아닌 난 핸드폰조차 쉽게 만들 수 없었다. 그리고, 한국에서 운전하려면 한국 면허증을 제 발급받아야 했다. 한국 운전면허증을 받더라도 내 차가 아닌 시아버지 차를 운전하는 건 부담 백배였다. 1년도 안된 신차를 좁은 주차장에 주차하는 상상만으로도 아찔했다. 한국에서의 운전은 포기했다. 만나고 싶은 지인, 하고 싶은 일로 가득했는데. 발이 묶여 자유롭지 못했다. 한껏 부풀었던 마음은 풍선 바람이 빠지듯 ‘푸우’ 빠졌다. 한국 신용카드가 없어서 현금으로 물건을 사고 “현금영수증 필요하세요?”라는 판매원의 말에 난 “아니요,”라고 짧게 대답했다. 현금 영수증이 필요 없는 이방인이었다.


내 나라 언어를 자유롭게 쓰면서 한국에 속하지 못한 느낌. 독일에서나 한국에서나 난 어느 나라에도 속하지 못했다. 이 생각이 미치자 시고모님이 말해주던 게 스쳐 지나갔다. 독일에 파독 간호사로 20대 초반에 온 시고모는 독일인과 결혼했다. 독일인 남편의 성은 고모의 이름 앞에 붙었다. 그럼에도 고모는 내게 “나그네 인생”이라고 말했었다. 사실 난 그 말에 의미를 잘 몰랐다. 시간이 지나며 그 말에 의미를 알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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