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랑시점 #2 긴장을 놓칠 수 없던 결혼 박람회
# 결혼 입문, 웨딩 박람회
결혼을 슬슬 준비해야겠다는 생각에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한 곳. 바로 웨딩 박람회. 결혼한 친구 너 나 할 것 없이 한 번씩은 다녀온 것 같던데. 우리도 언제가 봐야지.. 생각하던 차에, 어느 날 여자 친구가 카톡을 보내왔다. 인스타에서 웨딩 박람회 광고를 봤는데, 마침 이번 주라서 가보는 게 어떻겠냐고. 예약을 해야 한다고 해서 뭐 돈 드는 거 아니니까 일단 부딪혀보자고 했다. 이놈의 결혼 시장은 대체 시세가 어떻게 되는지 파악도 할 겸.
나중에야 안 사실이지만 결혼 시기, 아니 꼭 성수기가 아니더라도 매주 열리는 게 결혼박람회 이므로 조급하게 '대박 - 이번 주에 마침 웨딩박람회가 열려?' 하며 만사 제쳐놓고 갈 필요는 없다. 업체도 많지만, 어떤 곳은 주말마다 사무실에서 결혼박람회를 연다. 박람회를 어떻게 상시.. 그것도 사무실에서 할 수가 있지? 여기에서 바로 내가 큰 착각을 하고 있는 사실이 있었다.
# 내가 꿈꾸는 결혼을 할 수 있을까
내가 꿈꾸는 웨딩박람회의 모습은 이랬다. 수십 수백 개의 업체들이 나와서 자신들의 상품을 보여주고 현장에서 상담을 받으면소 사은품도 좀 챙겨주고(?), 한쪽에서는 게스트와 패널이 나와 결혼에 관한 토크도 하고 결혼을 준비하는 사람들이 모인 축제의 분위기! 왜 보통 코엑스나 DDP 컨퍼런스에서 만날 수 있는 페어의 결혼 버전이랄까? 여러 업체들 좀 만나고 나면 ' 내 결혼식은 이렇게 진행해야겠구나..' 하고 대충 감이 잡히는.
# 적어도 호갱은 당하지 않으리라
예약한 날짜가 다가오고, 우리는 삼성동 섬유 센터로 향했다. 회사가 코엑스 근처라 주변에 광고하는 것은 많이 봤는데, 그 실체와 처음으로 부딪혀보는 자리. 들어가기 전 여자친구에게 이번엔 시장 조사하러 가는 것이니 간단히 둘러보고만 나오자며 각오(?)를 다졌다. 웨딩 박람회도 뭔가 주최가 다를 테니, 적어도 우리 두 번은 가보자고. 뭐든 한 번에 결정하는 법이 없던 나는 갔다가 덜컥 계약이라도 할까 봐 무척 조심스러웠다.
드디어 웨딩 박람회에 도착한 우리. 마치, 용산 전자상가에 핸드폰을 사러 가듯. 신림 순대 빌딩에 곱창 먹으러 들어서는 마음처럼. 비장하게 들어섰는데. 세상에. 덜컥 계약을 하고 나왔다.
# 긴장의 끈을 놓지 마라, 이제 실전이다
덜컥이라는 표현을 쓰는 게 맞는 줄 모르겠다. 최대한 침착하고 이성적을 놓지 않도록 집중했지만, 판단력이 차츰 흐려지더니 어찌 되었건 계약을 나왔다. 모르면 당할(?) 수밖에. 내가 지금 이 글을 쓰는 이유이기도 하다.
"예약하셨어요? 예약자분 성함이.."
"네, 이쪽으로 안내해드릴게요. ㅇㅇㅇ 과장님 자리에 앉으시면 됩니다."
갑자기 어디를 앉으라고? 예약 내역을 확인하고는 미리 배정되어 있던 한 담당자에게 안내받았다. 내부로 들어가니 수십 개의 테이블에서 사람들이 한 명씩 배정되어 얘기를 나누는 모습. 무척이나 낯선 광경. 취업 면접장 같기도 하고. 여기저기 좀 둘러봐야 하는데, 난데없이 앉으라고 하니 좀 당황하긴 했다. 우리가 배정된 분께서 간단하게 인사를 한 뒤 대뜸 언제 결혼하느냐고 물었다.
" 저희.. 아직 날짜는 안 정했고요."
" 아.. 그럼 생각하신 시기라도..? "
" 내년 봄쯤..? "
그러더니 가지고 있던 종이에 이것, 저것을 물으며 적기 시작했다. 뭐 하시는 거지..?라는 생각이 들 무렵, 결혼 완전 정복 같은 - 일목 요연하게 적힌 결혼 준비 양식을 꺼내 보여주신다.
" 날짜는 아직 안 나오셨고, 식장은 정하셨어요? "
" 지금 서울에서 할지, 광주에서 할지 아직 미정이에요 "
놀라는 표정의 담당자.
" 내년 봄에 결혼하시는데 아직 어디서 할지도 못 정해셨으면, 지금 너무 늦으셨는데.. 우선 예식장도 정해야 하지만, 스튜디오 촬영 일정도 어서 잡아야 하고.."
최소 6개월 정도는 준비한다고 하던데, 내년 봄에 한다고 해도 6개월이 채 남지 않았으니 사실 시간이 많지 않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한편으로는 지금이라도 잘 왔구나 싶다.
" 장소가 안 정해졌으니, 드레스나 메이크업은 지금 정하기가 어렵겠네요. 그럼 스튜디오라도 한 번 보시겠어요?"
" 네, 한 번 보여주세요"
얘기를 한참 하다 보니, 문득 앞에 있는 사람이 우리 웨딩플래너.. 인가? 싶었다. 단순히 상담만 해주는 것 같지는 않은데. 이렇게 랜덤으로 웨딩플래너가 정해진다고? 은행에서 들어오는 순서대로 번호표 끊었다가 자리가 나면 담당자에게 배정받는 수준이다. 아니 그래도 일생일대의 결혼을 함께 준비하는 웨딩 플래너인데 이렇게 쉽게(?) 배정이 되는 건가. 주위를 다시 둘러보니 예비 신혼부부 수십 쌍이 본의 아니게 배정된 플래너들에게 상담을 받고 있는 것이었다. 우리에게 선택권은 없는 거야?
# 스드메의 첫걸음, 스튜디오
생각하고 있는 스튜디오나 원하는 컨셉이 있냐고 물었다. 컨셉이라고 하면, 결혼 전에 인스타그램에 올리는 사진들 말하는 건가? 생각나는 컨셉 보다는 얼마 전 인스타에서 봤던 한옥에서 찍은 웨딩 사진이 여자친구와 예쁘다고 말했던 게 기억났다. 플래너는 한옥 컷을 보여주시겠다며 앨범 몇 개를 꺼냈다. 몇 장을 넘기더니 나타난 한옥에서 찍은 모델들의 사진. 내가 봤던 거랑 비슷하다. 그 사진을 여기에서 찍었나? 신기해서 앞뒤로 한 장 두 장 넘겨 보았다.
" 우선 이거 보고 계시면, 몇 개 더 가져올게요 "
이렇게만 찍어도 바랄 게 없겠다 싶은 사진들이 많았다. 나와 여자친구가 이 사진을 찍으면 어떨지 상상도 해보고. '이 컷은 좀 별로다'라며 얘기하고 넘기고 또 넘기며 사진들을 감상했다. 그 자리에서 10개 정도 앨범은 본 것 같다. 스튜디오마다 레퍼런스/포트폴리오를 앨범 형식으로 만들어서 이 중에서 우리가 원하는 스튜디오를 선택하는 거였다. 스튜디오마다 가지고 있는 배경이나, 컷들이 다르기 때문에 한옥 컷을 찍고 싶다면, '레퍼런스' 중에 한옥 컷이 있는 스튜디오를 고르면 되는 거였고. 꼭 원하는 배경이나 구도가 있다면 거기에 맞는 스튜디오를 고르면 된다. 대체적으로 비슷하나, '인물 중심'과 '배경 중심'으로 구분하는 듯했다.. 스튜디오에 대한 자세한 얘기는 스튜디오 파트에서 다루도록. 여기도 할 말이 엄청 많다.. 몇 개나 봤을까? 테이블에 앨범 놓을 자리가 없어질 무렵. 고민에 고민 끝에 한옥 컷이 마음에 들었던 한곳을 골랐다.
" 일단 예약부터 하시죠. 제가 날짜 한 번 알아볼게요. "
마음에 드는 스튜디오를 고르니, 갑자기 어디론가 전화를 거는 과장님. 결혼식이 얼마 남지 않았기 때문에 일단 부킹을 걸어두는 것이 좋다고 했다. 통화를 하던 과장님은 2개 날짜가 가능할 것 같다고 했다. 지금 예약하지 않으면 촬영을 못 할 수 있으니, 지금이라도 픽스해두는게 어떻겠냐고. 맞는 말인 줄 알면서도, 갑자기 생각하지도 않았던 스튜디오 예약을 하게 생겼으니 당황스러웠다.
" 일단 예약 걸어두고, 혹시 마음이 바뀌시면 취소도 가능해요"
라는 말에 예정에 없던 예약을 하고 말았다. 아.. 내가 생각했던 그림이 아닌데.. 취소가 가능하다고 해서 일단 예약하긴 했지만, 왠지 영업(?) 당한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파일 철에서 계약서를 한 부 꺼낸다. 간단한 설명을 하고, 우리가 예약했던 내역을 하나씩 기록한다. 촬영 일정, 추가 옵션 내역. 결제 금액, 다년간 뽐뻐의 경험으로 냉철하게 바라보지만 이쪽 세계는 처음이라 듣고 있을 수밖에 없다. 무엇보다 이 가격이 비싼 건지? 싼 건지? 기준점이 없으니 구분이 안 간다. 그렇게 혼자 혼란스러워하는 사이. 게임을 끝내는 한 마디.
" 결제는 어떻게 도와드릴까요? "
" 아, 지금... 결제해야 하는 거죠?"
계약서 하단에 1주 이내에 얘기하면 100% 취소 환불 가능하다는 문구를 재차 확인하고 카드를 내밀었다. 분명히 오늘 결제할 생각은 없었는데 어떻게 된 거지 싶다. 고이 접은 계약서를 받고 플래너의 명함도 건네받았다. 다시 연락드리겠다고 결혼 장소가 결정되면 빨리 알려달라고 했다. 우리 갈 길이 멀다고.
# 결혼 시장, 심상치 않다
나오는 길에 사은품을 받아 가라고 해서, 제법 크기가 있단 쇼핑백 하나를 받았다. 선물을 쥐여주니 당황했던 마음이 풀리는 듯하다. 앞에 처음에 우리가 생각했던 한복 전시 부스와 신혼여행 부스가 몇 개 있었지만, 어서 이곳을 벗어나고 싶은 마음에 뒤도 돌아보지 않고 나왔다. 입구 앞에 우리를 반기던 '웨딩 박람회' 광고 배너를 다시 보고, 결혼 시작부터 결혼 시장이 심상치가 않음을 느낀다.
내가 생각했던 웨딩 컨퍼런스는 다 뭐였지? 웨딩 업체보다 플래너가 더 많은.. 웨딩 박람회를 바랬던 것은 아니었는데. 후기를 좀 더 찾아보니 정말 크게 진행하는 웨딩 박람회도 있다고 한다. 하지만 대부분 웨딩플래너 업체 주관으로 진행하기 때문에 관련 업체들만 참여하여 다양한 사은품과 프로모션으로 계약을 성사시키는데 목적을 두는 것. 그러니 작은 사무실에서도 웨딩 플래너들과 함께 부스 몇 개 가져다 놓고 박람회가 매주 가능한 것이다. 애초에 내가 생각하는 웨딩 박람회와 모습이 달라 아쉽기도 했다.
무엇보다 - 웨딩 촬영 일자를 잡아버린 나. 이거 잘 한 걸까?
예랑시점 TIP #2 웨딩박람회 주의(?) 사항
* 갑자기 계약을 하게 되어서 좀 당황스럽긴 했으나, 결혼을 어떻게 준비해야 할지는 대충 감을 잡을 수 있어서 도움이 되었어요. 무엇보다 이 시점에는 뭘 준비해야 하는지, 우리가 얼마나 빠르게 준비해야 하는지! 개념 정리 한 번 한다는 생각으로 둘러보는 것도 좋아요
* 박람회에 가면 결혼에 관련 업체들이 엄청 많이 들어와 있어요. 스드메는 물론, 남성 정장, 가전, 가구 신혼여행. 심지어 보험 상품까지! 절대 잘 알아보고 준비해야지 홀라당 넘어가서는 충동구매 금지!
* 박람회 입장 전, 여자친구와 사전에 '오늘의 목표'에 대해서 얘기하는 게 중요해요. 여기에서 결정할 것인지, 둘러만 보고 나올 것인지. 계약 시 선결제 해야 하는 부분도 있습니다. 이 부분도 미리 준비하세요. (카드도 가능)
* 현장에서 얘기하는 내용이 스드메 비용의 전부는 아닙니다. 현장에서 수많은 퀘스트와 비용들이 대기하고 있으니 너무 싼 가격에 현혹되지 마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