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물에 닿는 시 23 <자동판매기>
나는 멈추지 않는다
밤이든 낮이든, 누군가 다가와 버튼을 누르면
몸속에서 작은 전류가 일어나고
캔 하나가 굴러 떨어진다
형광등 아래, 내 그림자는 언제나 똑같은 모양이다
멀리서 보면 사람처럼 보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나는 말이 없고, 숨도 쉬지 않는다
한 번도 내 이름을 불러준 사람이 없다
새벽 열 두 시, 술 취한 남자가 다가와
나를 툭, 친다
휘청이는 그림자, 흐려진 눈동자
그 앞에서 변명하지 않는다
나는 아프지 않다
자동문이 열릴 때마다 바람이 들어온다
밤이 깊을수록 바람은 서늘해지고
나는 잠시 흔들린다
다시, 전선 속 전류처럼 몸을 곧게 편다
형광등이 깜빡거린다
불빛이 잠시 꺼졌다 켜질 때
사라졌다가 다시 태어난 것 같다
그 짧은 순간, 그림자가 잠깐 부서졌다가 다시 붙는다
언젠가는 멈출 수 있을는지
전원이 꺼지고, 플러그가 뽑히면
내가 사라질까 봐
멈추지 않는다
여전히
이 자리에서 자동판매기로 남는다
밤산책을 나갑니다.
골목 모퉁이에 허름한 자동판매기가 있습니다.
가로등 불빛 아래 서 있는 기계는 사람들보다 더 오랫동안 깨어 있습니다.
중년의 취객이 자동판매기를 툭툭 발로 찹니다.
그는 몸을 비틀거리며 무언가를 뽑으려다 실패하고는 헛웃음을 지으며 떠납니다.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는 기계.
맞고도 아프지 않은 듯 서 있는 사물.
마치 쉬지 못하는 노동자, 감정을 숨긴 채 하루를 버티는 사람 같다는 생각을 합니다.
불빛 아래에서 자동판매기의 그림자가 길게 늘어져 있습니다.
바람이 불면 움직이지 않지만, 그림자는 잠시 흔들렸다가 제자리를 찾는 것만 같습니다.
그 장면은 마치 형광등이 깜빡일 때마다 한 존재가 사라졌다가 다시 살아나는 느낌입니다.
기계처럼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 같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밤에 눈을 붙이지 못하고 일을 해야만 하는 사람들.
숨어 있어서 찾아보지 않으면 모르는 사람들.
글벗 되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오늘도 좋은 하루 보내세요!
#자동판매기 #노동자 #24시간 #아르바이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