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물에 닿는 시 22 <가방>
바다는 가방을 짊어지고 떠난다
밀물과 썰물이 지날 때마다
사라진 섬, 익사한 달빛
숨어 있는 암초, 해안의 해무들을 챙긴다
한 번도 빈 적 없는 가방
기억과 상실이 뒤섞인 파도 속에서
버려진 것들이 서서히 모습을 드러낸다
어느 날, 바다는 가방을 열어
백사장 위에 부서진 시간들을 펼쳐놓고
다시 아무 일 없다는 듯 가방을 닫는다
파도는 흔들리고, 바다는 길을 잃지 않는다
떠나는 것도, 남는 것도
결국 바다의 몫이다
가방은 무겁고 길은 멀다
바다의 끝에서 나는
길을 따라 걷고 있다
가방 속에 무엇을 담고
무얼 버릴지 숙고하며
발끝이 물에 닿을 때마다
내가 남길 것들을 떠올린다
놓지 못한 끈들이 가방에 수북했으므로
이제 벗기로 한다
더 이상, 나를 묶지 않는다
가방이 무거운 때가 있습니다.
저의 짐도 있지만, 누군가의 짐도 함께 섞여 있습니다.
벗어야 할 때를 몰라서 잠을 잘 때도 지고 있었지요.
잠시 내려놓아도 이내 다시 메고 길을 떠나야 했습니다.
방향은 알겠는데 걷다 보면 마음이 여러 갈래이고, 가방의 무게도 무거워집니다.
바다와 함께 걸었던 날이 있습니다.
한참을 걸었습니다.
수많은 명암을 등에 진 바다가 가슴에 가득 들어왔지요.
깊은 암초와 외로운 섬과 살겠다고 견디는 생명들을 업고 해안으로 왔다가
다시 저 먼 곳으로 떠 밀려갔습니다.
바다도 짊어진 가방이 있다는 생각.....
자연은 끝없는 순환과 흘러가는 흐름을 가르칩니다.
놓지 않아서 쌓여 있던 것들을 하나씩 떠나보내는 법을 알려줍니다.
언젠가 자신의 짐을 바라보며 잠시 멈추고
무엇을 챙기고 무얼 버릴지 직면해야 할 시간이 옵니다.
우리는 길 위에서 여행하는 존재요
많은 것이 필요 없는 순례자입니다.
글벗 되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좋은 하루 보내세요!
사진출처>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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