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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름의 편집실

사물에 닿는 시 21 <필름>

by 모카레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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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름은 하늘이 돌려보는 오래된 필름이다


바람이 필름 릴을 감으면

구름은 어제의 장면을 지우고

새로운 화면을 투사한다


필름이 낡아 찢어지듯

폭풍이 몰아치고

해 질 녘엔 빛의 테두리가

붉게 타오르며 사라진다


광채와 어둠이 교차하며

흰 장면과 검은 프레임을 번갈아 돌릴 때

하늘은 아무 말 없이 기록을 이어간다


하얀 자막이 흩날리는 겨울


필름의 먼지가 빛에 반짝이는 순간

구름이 그려낸 장면은

아무도 모르는 이야기로 사라진다


가끔은 오래된 장면이 반복된다


소나기처럼 불쑥 내려앉는 기억

창가에 스며든 낡은 풍경처럼

흐릿해진 얼굴이 다시 떠오른다


흩어진다고 잊히는 것이 아니다


네가 떠난 자리, 오래된 빛이 남아 있다






문득 하늘을 올려다본 날이 있습니다.

바람이 구름을 밀어내고, 다시 불러들이는 장면이 마치 오래된 극장에서 돌아가는 필름처럼 보입니다.

신의 거대한 손이 릴을 감아올리고 있는 느낌입니다.

지나온 날을 되감고, 때로는 멈춰 세우고, 다시 흩어지게 만드는 것만 같습니다.


구름을 바라보며 걸어온 길, 잊었다고 생각한 것들, 다시 돌아올 수 없는 순간들이 하늘 한쪽에서 재생됩니다.

구름은 머물지 않지만, 그렇다고 완전히 사라지는 것도 아닙니다.

어디선가 또 다른 형태로 흘러가지요.

우리가 나눈 말들, 서로를 바라보던 눈빛, 한 계절을 함께 지났던 순간들이 그렇게 흐릅니다.


멈추지 않는 흐름 속에 떠난 것과 남아 있는 것을 생각합니다.

흩어진다고 잊히는 것은 아니겠지요.

당신이 바라본 하늘 어딘가에도 오래된 빛이 남아 있을 겁니다.


어쩌면 그 빛 때문에 여기까지 온 것일 수 있지요.







글벗되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오늘도 좋은 하루 보내세요!



사진출처> pixabay

#신 #구름 #필름 #하늘 #편집 #빛 #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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