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물에 닿는 시 20 <뿌리>
너는 나무다
껍질은 단단하고 뿌리는 깊다
바람에도 쉽게 흔들리지 않는다
그러나, 네 안에 바다가 있다
밀물과 썰물이 감정을 밀고 당긴다
어떤 날은 너도 모르게 넘쳐흘러
뿌리 끝까지 파도가 친다
스스로를 다독인다
물을 가둬야 하고 흔들리지 말아야 한다
땅속 깊은 어둠에서
너울이 휘감고, 나무는 조금씩 떠밀려간다
젖은 숨이 나무껍질 틈새로 새어나간다
바다는 너를 시험한다
네 안에서 파도가 솟구치고
발끝이 젖는다
흙이 무너지고 살이 뜯겨나간다
흔들리는 중심을 잡으려 하지만
가지 사이로 물이 새어 나온다
밤은 깊어가고 너는 네 안을 걸어간다
가장 깊은 곳에 닿으면 파문도 잠잠해진다
너의 묵묵함은 잎맥이 되고
네 안의 물결은 잎을 타고 흐르며
너는 더 이상 나무일 수 없다
천천히 바다가 된다
당신은 견고한 사람입니다.
바람이 불어도 쉽게 흔들리지 않고, 단단한 뿌리를 뻗어 땅을 지탱하는 나무입니다.
사람들은 당신을 보고 강인하다고 말합니다.
흔들리지 않는 모습이 든든하다고 합니다.
그러나, 스스로 알고 있지요. 그 단단함 이면에는 일렁이는 파도가 있다는 것을요.
삶은 때때로 우리를 나무처럼 살기 원합니다.
감정을 표현하기보다, 흔들림 없이 버티며 단단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우리는 나무이면서도 바다입니다.
슬픔이 밀물처럼 차오르고, 기쁨이 썰물처럼 빠져나갑니다.
어떤 날은 이유 없이 가슴이 벅차오르고, 어떤 날은 작은 말 한마디에도 깊이 가라앉습니다.
감정은 가두려 해도 새어 나옵니다.
흔들린다고 해서 나약함은 아닙니다.
바다는 흐르며 자신을 확장하고, 파도를 통해 스스로 치유합니다.
뿌리 끝까지 내려가 보면, 고요한 심연이 있습니다.
우리의 내면도 그렇습니다.
가장 깊은 곳에 온전한 자신이 있습니다.
시험이 올 때,
나무로 서 있기보다, 때로는 바다가 되어 흐르는 것이 더 자연스럽습니다.
묵묵함은 잎맥이 되고, 내면의 물결은 잎을 타고 흐르며, 아픔을 거슬러 더 넓고 깊은 존재로 만들 어 줄 것입니다.
수십 년을 뿌리내린 나무도 바람 앞에서 흔들리고, 비에 젖고, 계절이 바뀔 때마다 자신을 비워냅니다.
나뭇잎은 흩날리며 강물에 실려가고, 언젠가는 바다에 닿습니다.
바다는 다시 하늘을 끌어안고, 빗물이 되어 나무에게 돌아옵니다.
흔들려도 괜찮습니다.
흔들린다고 부서지는 것은 아닙니다.
흘러가도 괜찮습니다.
흘러간다고 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천천히 바다가 되어가는 나무처럼,
흔들리는 순간에도, 나 자신은 여전히 나입니다.
현재를 살고 있는 나와 너와 우리를 생각했습니다.
지금, 여기를 살아내는 사람들은 이런 모습이 아닐는지 상상해 봅니다.
글벗 되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오늘도 좋은 하루 보내세요!
사진출처>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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