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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과 그림자의 바퀴

사물에 닿는 시 19 <바퀴>

by 모카레몬

브런치북의 날짜를 지정을 하지 않고 발행버튼을 누른 탓에, 중복 발행하였음을 양해부탁드려요ㅜㅜ



새벽 두 시, 편의점 불빛 아래에서 별을 세며 중얼거린다

"하나, 둘, 셋... 백 개쯤 빠진 것 같아."


어제는 분명 거기 있었는데 오늘은 없다


별이 하나씩 사라질 때마다 그림자는 조금씩 자랐다


길가의 가로등 아래, 내 그림자는 도로까지 늘어지고

택시는 서둘러 밟고 지나간다


버스 정류장 벤치에 앉아

바퀴 소리를 들었다

누군가 밤을 짊어지고 간다


뒤꿈치를 들었다

그림자가 조금 더 길어진다


그림자가 따라오지 않는 순간이 있었다


자정이 지나면서 길이 사라진다

택시는 멈추고 편의점 불이 꺼진다

별이 희미해지고

그림자가 수축한다


바퀴를 생각했다

밤이 한 바퀴 굴러가고 있다

나는 그 위에서 지워지고 있었다






부모님 몰래 임용고시를 보지 않고, 방황했던 밤이 있었습니다.

사춘기를 앓았던 것 같은데, 청년이 되어서도

뾰족한 마음의 돌기를 긁곤 했습니다.

친구들은 자리를 잡아가는데, 스물다섯을 넘기고

여전히 어디에도 속하지 못했습니다.

그날 밤도 그랬습니다.


어둠은 창문 틈으로 스며들었고, 이불을 덮은 채로

걸어야 했던 길과 걸어버린 길을 나란히 놓고 바라보았습니다.

어느 길이 틀렸던 걸까? 어느 길이 옳았던 걸까?

이 길과 저 길 사이에서 반쯤만 걸어본 채 주저앉았습니다.


버스 정류장에 앉아 있었던 밤.

누군가는 아침을 기다리는 밤이었고,

누군가는 끝을 기다리는 밤이었습니다.

별이 뜨고, 별이 지고,

길을 걸어가던 사람들이 사라지고,

택시가 멈추고, 편의점 불빛마저 꺼졌습니다.


선택하지 못한 사람이었을까?

선택했지만, 선택한 길에서 걸어 나와 버린 사람이었을까?

어느 쪽이든 밤의 한가운데에서

길도 없이 걸었고, 목적지도 없이 걸었습니다.

떠돌면서도 떠나는 사람이 되지 못했고,

떠나지도, 남지도 못한 채 이불을 덮지 못하고 서성였습니다.


가고 있는 길 어디 즈음, 사르트르의 문장 사이에 있다고 위로했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다 그런 거라고.


인생은 B와 D사이의 C다. (Birth와 Death사이의 Choice) - 장 폴 사르트르 (주1)


갈래 길의 한 길을 선택한 것도 저였기에,

이 길을 가다 보면, 목적지가 있을 것 같은 막연함과 불안이 그림자처럼 쫓아왔습니다.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주리라

참으로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

(이사야 41:10, 개역개정)



빈곤한 정신이 가진 것이라곤 하늘의 동아줄인 믿음뿐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때마다 이사야 말씀이 저의 안전지대였습니다.




끄적거렸던 노트들을 연도마다 펼쳐봅니다.

미완성인 채로 적다 말고, 지웠다 쓴 흔적이 많습니다.

그때로 돌아간다면, 잠이라도 푹 자라고 다정하게 말해주고 싶습니다.


저의 청년을 앓고 있는 이들에게 안부를 전하고픈 아침입니다.



주1) 사르트르. 존재와 무. 동서문화사





글벗이 되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오늘도 좋은 하루 보내세요!


사진출처> pixabay

#청년 #길 #선택 #진로 #별 #그림자 #바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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