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 day . 에필로그.
절대적 높이를 가진 자는 외부에 반응하는 것을 자기 업으로 삼지 않는다. 자기를 이기려 하지 타인을 이기려 하지 않는다. 경쟁 구도 속으로 스스로를 끌고 가지 않는다. 경쟁에 빠지지 않고 오히려 그것으로부터 벗어나 그 구도 자체를 지배하거나 장악한다. 자기 게임을 할 뿐이다. 태연자약한 태도다. 그래서 자기가 애써 이기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이 자멸함으로써 승리자의 지위를 오래 유지한다. 나무 닭이 그랬다. 그래서 노자도 "자신을 이겨야 진짜 강자다〔自勝者强〕"라고 한 것이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사람은 일등보다는 일류를 꿈꾸는 사람이다. 일등은 판을 지키는 사람이고, 일류는 새판을 짜는 사람이다. 우리가 따라 하고 부러워하는 그 단계다. 짜진 판 안에서 사는 데 만족하는 나라는 전술적 차원에 머무르고, 판을 짜보려고 몸부림치는 나라는 전략적 차원으로 상승한다. 전략적 차원에 서라 야만 진정한 의미의 자유와 독립과 창의를 맛볼 수 있다.
탁월한 사유의 시선. 최진석. 21세기북스. 2018.
가끔, 꼬리보다 머리가 좋다는 생각을 하곤 했었다.
뱀의 꼬리보다는 닭의 머리가 낫다는 말처럼
어디서든 조금 더 나아지고 싶었고, 뒤에 머무는 건 왠지 아쉬웠다.
어릴 때부터 허당의 '털팔이' 뒷면에서 '똑부리'가 힘을 부리면,
덜 자란 마음에도 힘이 돌았다.
더 잘하고 싶은 마음은 곧잘 ‘더 앞서고 싶은 마음’이 되었고,
그 마음이 나를 이끌어 한계를 넘어서보려 애를 썼다.
앞장서는 닭이 나를 대표해 주는 것 같았고,
그 머리의 방향이 곧 내 방향인 듯 믿었다.
‘선두에 서고 싶다’는 욕망은 늘 다른 사람을 기준으로 삼는다.
남보다 앞서야만 나의 위치를 확인할 수 있으니까.
그 순간부터 방향은 사라지고 속도만 남는다.
내가 어디로 가는지보다 얼마나 빨리 가는지가 중요해진다.
그런 나를 자주 보곤 했었다.
누군가의 말 한마디에 괜히 마음이 흔들리고,
잘한 일보다 못한 부분이 오래 맴돌고,
칭찬은 금세 사라지는데 비교는 오래 남는다.
늘 함께 공존하는 ‘닭머리’와 '꼬리'.
머리에는 방향이 있고, 앞을 보는 시선이 있다.
문제는 그 시선을 어디에 두느냐이다.
타인을 바라보면 경쟁이 되고,
자신을 바라보면 성장이 된다.
머리가 길을 열면 꼬리는 길을 완성한다.
머리가 움직여도 꼬리가 따라주지 않으면 방향은 틀어진다.
머리는 시작이고, 꼬리는 지속이다.
머리가 앞선다는 건, 사실 꼬리가 함께 걸어왔다는 뜻이다.
닭머리가 되는 용기도 좋지만, 뱀꼬리로 뒤에 서는 품위도 필요하다.
머리는 세상을 이끌고, 꼬리는 세상을 잇는다.
진짜 어른은 언제 머리가 되고 언제 꼬리가 될지를 아는 사람이다.
앞서기 위한 속도가 아니라,
어제의 나보다 깊어지기 위한 리듬으로 살려한다.
빠르지 않아도 괜찮고, 어느 지점에 있든
나만의 방향을 놓치지 않으면 될 일이다.
앞에 서 있던 날들도 있었고,
한참 뒤에 남아 있던 날들도 있었지만
돌아보면 그 모든 시간이 여기까지 데려왔다.
머리로 있던 날은 시작을 배웠고,
꼬리로 있던 날은 오래가는 법을 배웠다.
앞서지 못해 출렁이던 시간들조차
헛되지 않았다는 걸 이제는 안다.
삶은 살아가는 것이지, 보여주기 위한 것이 아니다.
지금까지 걸어온 방향을 되돌아본다.
그 방향이 나를 겉이 아닌 안쪽으로 데려간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
각각 자기의 일을 살피라 그리하면
자랑할 것이 자기에게는 있어도 남에게는 있지 아니하리니 (갈라디아서 6:1)
<일상을 건너는 문장 30일> 브런치북은 오늘을 마지막으로 연재를 마칩니다.
그동안 깊게 읽어주신 독자분들께 감사의 마음을 전해드립니다.
새로운 브런치북으로 인사드리겠습니다:)
오늘도 몸과 마음이 환한 날 보내시길 바래요^!^
사진. pixaba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