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LA] 언젠가 한 번쯤, 디즈니랜드2

지치셨나요? 네니요.

by 김삐끗

디즈니랜드에서 반나절밖에 안 됐는데 이미 우리는 1만 보 가까이 걷고 있었다.


점심을 디즈니랜드 밖에서 먹자는 남편의 제안에 찬사를 보내며 벌써 지쳐버린 몸을 이끌고 디즈니랜드 정문을 나섰다.(LA디즈니랜드는 재입장이 가능합니다)


마트에 잠깐 들러 다음날 먹을 점심거리를 사고 바로 옆에 '레이징 케인즈'라는 치킨핑거 체인점에 들어갔다. 그곳은 미국 내에서 체인점을 많이 가지고 있는 유명한 치킨 브랜드였다. 늘 그렇듯 산더미같이 나오는 치킨과 감자튀김에 놀라며 테라스에 앉았다.


우리가 보는 풍경은 꽤나 미국스러웠다. 옛날 토요영화에서 보던 80년대 미국 영화에서 나오는 분위기를 거침없이 내뿜고 있었다. 영화 세트장 아니야?스러울 정도로 삭막하고 외로운 도로 옆에 커다란 선인장이 대뜸 서있고, 저 먼 도로에서는 뿌연 흙먼지가 일고 있었다.


여행하면서 종종 우리가 진짜 다른 나라에 와 있다는 게 훅 느껴지는 순간들이 있는데 이 순간이 그랬다. 통통한 감자튀김과 커다란 닭조각을 먹으며 점보사이즈 콜라를 연신 들이킨다. 옆테이블 대화에서 흘러나오는 타국의 언어가 배경음악처럼 깔리고, 곧 카우보이가 나올 것 같은 흙먼지 가득한 도로와 커다란 선인장 몇 그루. 그때의 재미가 일상을 살아가며 종종 우리를 들뜨게 했다.


점심을 먹으며 다리를 쉬었다. 내일까지 디즈니랜드 여정은 아직 많이 남아 있었다. 한국이었으면 힘들어서 다음날 일정을 바꿨을 테지만 우리는 이미 이틀 치 표를 끊은 상태고 이곳은 하루가 천금 같은 여행지다. 디즈니랜드를 알차게 즐기겠다는 의지를 다지며 비장하게 입구로 다시 전진했다.


LA디즈니랜드에서 역사가 깊은 인디아나존스를 시작으로 스타워즈와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를 탔다. 오랜 기다림에도 후회 없는 놀이기구들을 타며 엉뚱하게 우리나라 교육에 대해 생각했다. 이런 놀이기구를 만들고 테마파크를 조성할 수 있는 창의력은 어떻게 교육될까? 차원이 다른 구성과 재현, 밀도 있는 경험 설계는 놀라울 따름이었다. 아이가 생긴다면 꼭 디즈니랜드에 와서 즐기고 경험해보게 하고 싶었다.


아이와 함께 오고 싶은 또 다른 이유는 디즈니 캐릭터들과 만날 수 있다는 점이다. 디즈니랜드 곳곳에는 디즈니 캐릭터들이 출몰하여 관람객과 만난다. 어떠한 디즈니 캐릭터도 좋아하지 않는 나였지만 슬픔이를 만난 뒤로 왠지 그 캐릭터에 정이 갔다. 시무룩한 표정을 지으며 두 손을 배 위에 어색하게 올려 두고 관람객을 향해 아주 소심한 인사를 해준다. 그 옆에 있는 기쁨이는 수십 명에게 일일이 발랄하게 인사하느라 난리가 났는데 슬픔이는 그 옆에서 이 무대가 아주 곤란하다는 듯이 도망치고 싶다는 몸짓을 줄곧 보여줬다.


그 모습이 친근하고 정이 갔다.

내향인으로서 동질감이 느껴졌고 통통한 몸도 역시 그랬다. 슬픔이와 관련된 기념품을 사고 싶었지만 동심을 파괴하는 가격에 놀라며 집에 가서 인사이드아웃을 한번 더 봐야겠다는 마음만 가져왔다.


저녁은 마트에서 산 베이글로 대충 때우고 마지막 놀이기구로 미키마우스 관람차를 탔다. 뱅글뱅글 돌아가는 평범한 관람차가 아니었다. 돌면서 기우는 각도에 따라 우리가 탄 칸이 쭈욱 미끄러져서 관람차 끝에 대롱대롱 매달리게 되는 방식이었다. 너무 무서워 보여서 주저했지만 여기까지 와서 꼭 타봐야 한다고 생각해 후들거리는 다리를 부여잡고 탑승했다.


우리 맞은편에는 초등학생으로 보이는 남매가 같이 탔다. 두 아이는 신나하며 웃음을 한 아름 머금고 있었다. 나는 어른답게 눈물을 찔끔 흘리며 남편의 팔에 얼굴을 묻고 덜덜 떨었다. 그때는 무서움에 아무것도 안보였지만 지금 생각하면 아이들에게 꽤 볼썽사나운 모습이 아니었을까.


겨우 마지막 놀이기구까지 타고 일루미네이션을 기다렸다. 일루미네이션은 기대가 하나도 되지 않았던 쇼다. 월요일이라 퍼레이드나 불꽃놀이가 없어 아쉬운 마음에 그래 이거라도 보자고 하며 떨이를 사는 마음으로 쇼를 기다렸다.


앞줄에 앉아 대기해야 해서 포기하고 뒤 어디쯤 보려고 했는데 그마저도 자리가 없어 이동하면서 봐야 했다. 이동하면서 봐도 환상적인 레이저와 적절한 음악은 새로운 세계를 경험하게 해 주었다. 그 쇼를 보는 순간만큼은 우리를 설렘으로 가득 채워주었다. 겨울왕국 같은 아는 음악이 나오면 신나게 렛잇고 부분만 따라 부르며 어린아이처럼, 세상사 아무 걱정 없는 것처럼 깡총거렸다.


디즈니랜드에서 이틀이나?

시간이 아깝다고 생각했다. 막상 디즈니랜드를 즐기고 나니 이제는 '기꺼이' 이틀이라는 시간을 쓸 만하다고 말한다.


잔뜩 긴장하며 살았는데 나이도, 체면도, 현실도 잊은 채 장난스러운 세계에서 보낸 이틀은 여행 안에 또 여행을 떠난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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