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캘리포니아] 요세미티1

요세미티 가는 길 기저귀 필수

by 김삐끗

기대는 여행을 미리 시작하게 한다.


여행 전 남편과 '미국 여행에서 가장 기대하는 거 말하기'를 50번쯤 했는데 빼놓지 않고 나오는 곳이 '요세미티 국립공원'이었다. 하도 많이 이야기를 나눠서 이미 여러 번 다녀온 곳처럼 익숙한 곳이 되어 버렸다.


우리는 사람들이 북적북적한 곳보다 조용한 자연을 좋아했기에 거대한 자연을 느낄 수 있는 국립공원을 꼭 한번 가보고 싶었다. 게다가 거대한 바위산들과 폭포, 두께가 사람 키만 한 나무들이 이룬 숲은 생각으로도 신비했다.


우리가 있는 곳에서 요세미티까지는 차로 4시간.

꽤 먼 거리였고, 요세미티 안에서 식료품을 살 수 있을지 몰라 미리 잔뜩 장을 봤다. 물론 한국 라면은 필수로 장바구니에 넣었다.


편도 4시간의 운전을 대비해 나도 운전연수를 받고 왔고, 국제운전면허증도 발급받아 왔다.

마음의 준비까지 완벽했는데, 문제는 남편이 나를 못 믿었다. 나도 나를 못 믿은 덕분에 운전을 하지 않고 편하게 요세미티에 도착했다. 대신 나는 내비게이션을 보는 역할을 맡았는데 목적지를 입력하니 한국에서는 들어본 적이 없는 안내 음성이 들렸다.


"100km 직진하세요"


100km 직진이 가능하다니. 더 재밌는 건 우회전을 할 때 우리나라는 곡선으로 완만하게 길이 닦여 있는 반면 이곳은 우회전하는 도로가 90도 직각 그 자체였다. 표지판도 제대로 되어 있지 않은 곳이 종종 있어 내비게이션에 온 신경을 집중했다. 우회전을 할 때마다 갑작스럽게 꺾이는 길에 여기가 맞나 싶고, 몸이 계속 한쪽으로 쏠렸다. 너무 땅이 넓다 보니 일일이 모든 도로를 신경 쓰기 어려웠나 보다 하면서 새로운 운전 환경에 재미있어 했다.


가도 가도 끝없이 펼쳐지는 사막 같은 땅을 지났다. 잎사귀가 뾰족하거나 선인장 같은 질감의 식물들이 듬성듬성 자라고 있는 황톳빛, 적갈색빛의 풍경이 땅을 뒤덮고 있었다. 계속 똑같은 장면만 나오는 영화를 보는 것처럼 지루해질 만도 하지만 워낙 이국적인 풍경이라 4시간 동안은 흥미롭게 갔다.


이런 곳에도 사람이 사나 싶을 때 가끔 집들이 한두 개 등장하고는 했다. 와 이 동네는 아이스크림 하나 사 먹으려면 차로 한 시간은 가야겠는걸. 어디든 집 앞에 편의점이 있는 우리나라 하고는 사뭇 다른 생활이 보였다.


요세미티 바로 근처에 한식집 간판이 보였다.

반가운 마음과 함께 매콤한 김치찌개에 제육볶음 넣은 상추쌈을 한 사바리 먹고 가고 싶었지만 한식을 되도록이면 먹지 않겠다는 쓸데없는 다짐을 한 터라 그냥 지나쳤다.

아까 산 한국 라면은 우리의 생명수 같은 영혼의 음식이어서 한식을 먹지 않겠다는 다짐에는 포함이 안 된 음식이다.


고지가 점점 높아지면서 차 옆이 낭떠러지로 바뀌기 시작했다. 요세미티 가는 길이 그렇게 무섭다고 하는데 아, 이래서 무서웠구나. 안전 펜스도 없이 한쪽이 낭떠러지인 좁은 길을 계속해서 달려야 했다.

산에 오르는 길이라 구불구불하고 좁아서 남편은 기저귀를 차고 운전했어야 했다며 식은땀을 뻘뻘 흘리고 있었다. 최대한 낭떠러지 밑을 안 보려고 했지만 그래도 멋진 풍경은 보고 싶은 마음에 힐끔거리며 풍경을 감상했다.


감상이라기보다 우리가 여기서 떨어지면 마지막으로 보는 풍경이 이런 풍경이겠군 정도의 생각을 하며.


얼마 전 요세미티에는 큰 불이 났었다.

우리가 갔을 때는 나무들이 불타서 검게 변해 있었고, 뾰족뾰족한 나무의 흔적들만 남아 기괴한 풍경을 만들어 내고 있었다. 불 탄 구간이 매우 넓어 불이 얼마나 크게 났었는지 한눈에 보였다. 불에 타고 남은 앙상한 검은 가지들이 나무의 죽음을 알렸다.


낭떠러지로 충분히 무서웠는데 사방이 검게 탄 나무와 재가 된 풀들로 둘러싸인 곳을 지나가려니 갑작스럽게 우리는 말이 없어졌다. 너무 큰 불이 나면 자연 소화될 때까지 손 쓸 수가 없다고 한다. '산불조심', '꺼진 불도 다시 보자'같은 일상적인 표어들이 갑자기 굉장히 중요한 말들로 느껴졌다.


입구에 도착해 표를 끊었는데, 내비게이션이 이상했다.

앞으로 1시간을 더 가야 우리 숙소에 도착한다는 것이다. 우리 숙소는 입구 근처에 있다고 했다. 아뿔싸 내가 또 사고를 쳤구나. 낭떠러지 길을 이렇게 멀리 달려왔는데 목적지 잘못 입력한 거 아닌가 싶었다. 등에서 식은땀이 배어 나왔다.


마침 길 옆에 작은 쉼터가 있어서 화장실도 갈 겸 목적지도 다시 확인할 겸 잠시 쉬어 가기로 했다.

내려서 다시 확인해 보니 목적지는 제대로 입력한 거였고, 입구 근처에 있다는 우리 숙소는 입구에서 차로 1시간 거리에 있었다. 요세미티가 워낙 커서 차로 1시간이면 근처라고 표현하나 보다 싶어 안도했다.


계속 달리다 보니 터널이 나왔다.

터널을 지나 어둠이 걷히고 저 멀리 끝에 빛이 보였다. 환한 빛과 함께 겹겹이 쌓인 바위산이 세월을 머금고 한순간 펼쳐졌다. 그게 얼마나 극적인지 오는 길의 무서움과 피로함이 순식간에 자취를 감췄다.


사진을 열심히 찍어봤지만 그곳의 공기와 냄새, 옅은 안개와 빛의 반사를 담지는 못했다. 유명 패션 브랜드의 로고가 앞에 보이는 바위산에서 나왔다고 하는데, 그런 건 전혀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저 수백 년 동안 한 자리를 버티고 서 있는 덤덤한 바위산이 보일 뿐이었다.


하루 종일 여기에 있으면서 하루 동안 빛을 받아 변화하는 이곳 풍경을 눈에 담고 싶었다. 한 번의 사진 찍기로 끝낼 풍경이 아니었다. 아쉽게도 앞으로 한참을 더 달려 근처에 있는 숙소를 찾아가야 했기 때문에 요세미티를 나설 때 다시 한번 이곳 풍경을 보기로 하고 가던 길을 계속 이어갔다.


가도 가도 숲인 이곳이 참 좋았다.

기대감으로 수십 번도 넘게 왔던 요세미티. 드디어 요세미티에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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