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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큐비트 프로토콜] 4. 절박함 속의 믿음

by 백기락

다행이었다.
불안한 마음으로 앱을 열었을 때,
가까운 곳에 사용 가능한 차량이 있다는 건, 어쩌면 작은 기적처럼 느껴졌다.
거리는 채 500미터도 되지 않았고,
나는 가방을 메고 빠르게 그 방향으로 걸었다.

오랜만에 실행한 그 앱은
버전 업데이트부터 로그인까지 몇 가지 번거로움을 요구했지만,
다행히 기억해둔 계정은 유효했고,
차량은 곧 눈앞에 나타났다.

터치.
딸깍,
문이 열리는 소리와 동시에,
무언가 가슴 밑바닥에 묻어 두었던 현실감이 다시 떠올랐다.

‘이제 진짜 시작이구나.’

앉은 자리에서 시동을 켜고, 내비게이션을 열었다.
어디로 갈까.
가까운 호텔? 찜질방? 고속버스터미널?

그런데 곧바로 떠오른 건
몇 해 전, 프리랜서 일을 하며 잠시 머물렀던
강원도 원주였다.
아는 사람도, 특별한 연고도 없지만,
그만큼 익명성이 보장될 수 있는 곳.

고속도로까지 진입하기 위해 복잡한 시내를 빠져나가는 중이었다.
그 순간,
다시 진동이 울렸다.
번호는 또 바뀌어 있었다.

“당신이 어딜 가는지, 나만 알고 있는 게 아니야.
그들도 알고 있어.
지금 날 만나지 않으면, 넌 오래 버티지 못해.”

손에 쥔 폰이 차가웠다.
한순간 등 뒤로 소름이 훑고 지나갔다.
이번엔 ‘협박’이라는 말보다 ‘예언’에 가까웠다.
이 사람은,
정말 뭔가를 알고 있는 걸까.

순간, 내가 얼마나 많은 장치를 켜놓고 다니는지를 자각했다.
스마트폰은 물론, 차량 앱, 내비게이션, 심지어 와이파이까지.
모든 게 위치 정보의 노출이었다.
내가 지금까지 무심코 사용한 이 모든 것들이,
‘그들’에겐 지도처럼 나를 향하고 있을지도 몰랐다.

전화를 걸까 말까 망설였지만,
지금은 아니다.
아직 도심이다.
CCTV, 도로, 차량 번호, 내 얼굴, 내 움직임…
너무 많은 정보들이 이 도시의 눈이 되어 있었고,
지금 이 순간,
나는 누구보다 평범하게 도망쳐야 했다.

일단 시내를 벗어나자.
고속도로에 진입한 다음,
속도를 어느 정도 올린 뒤,
내가 진짜로 원하는 순간에만,
그 사람에게 전화를 걸 생각이었다.

이젠, 그 누구도 믿을 수 없었다.
하지만, 그 누구라도 붙잡지 않으면 죽을 수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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