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소설:고스트 프로토콜] 5. 익숙했지만 두려웠던 해변

by 백기락

원주를 향하던 고속도로.
예전에 자주 다녔던 길이었다.
업무차, 여행차, 혼자 힐링하러 떠났던 시간들이 겹쳐 떠올랐다.
익숙한 고속도로 표지판들과, 길게 이어진 차선.
이상하게도 그 익숙함이
내게 용기를 줬다.

폰을 꺼내 들었다.
그리고, 그 번호.
조금 전, 또 다시 번호를 바꿔서 문자를 보낸, 그 번호를 눌렀다.
지금 연락을 하지 않으면
계속 쫓기게 될 거란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무언가를 결정해야 했다.

"뚜—뚜—"

몇 초 후, 전화가 연결됐다.
상대는 짧고,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전화를 걸 줄 알았습니다.”

숨을 골랐다.
내 목소리도, 지금 이 통화도,
녹음되고 있을지 모른다고 생각하니
말 한마디 한마디가 조심스러워졌다.

“누굽니까. 왜 자꾸 나한테 연락하는 겁니까.”

상대는 약간 숨을 들이쉰 뒤, 말을 이었다.

“난 군 방첩사 소속 요원입니다.
지금 이름을 밝힐 수는 없습니다.
다만… 당신과 관련된 정보가 모종의 경로로 중국 측 스파이 조직에 전달됐고,
그들이 한국에 잠입해 당신을 확보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습니다.”

“왜 저입니까. 전 그냥… 코딩하고, 집에만 있는 사람입니다.”

“바로 그 점이 이상했습니다.
당신은 지금까지 너무 조용했고, 움직이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정보 흐름상에 당신의 이름이 떠오르기 시작했고,
그 타이밍이… 너무도 절묘했습니다.
우리는 그들이 당신을 제거 대상이 아닌, 확보 대상으로 판단하고 있다는 점에서
사안이 심각하다고 판단했습니다.”

순간, 등골이 서늘해졌다.
‘제거’와 ‘확보’ 사이.
어쩌면 그것이 생과 사의 경계일지도 몰랐다.

“그럼 어쩌라는 겁니까. 지금 당장 어디서 만나자는 건가요?”

상대는 잠시 말을 멈췄다.
그 짧은 정적이, 오히려 더 긴장감을 불러일으켰다.

“지금은 당신이 위치를 선택하는 것이 좋습니다.
우리가 먼저 접근하면 그들이 눈치챌 수 있습니다.”

나는 생각했다.
사람이 적당히 있고,
시야가 넓고,
무언가 이상하면 도망칠 수 있는 곳.

곧장 방향을 틀었다.

“강릉. 안목해변으로 오십시오.
4시간 뒤. 그때쯤이면 당신도 도착할 수 있겠죠?”

“…알겠습니다. 그 시간 맞춰 도착하겠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내 번호로 다시 연락하지 마십시오.
그 전에 내가 먼저 전화를 걸 겁니다.
그 시간까지… 난 당신을 믿지 않습니다.”

“충분히 이해합니다.”

뚝.
전화를 끊었다.

고속도로는 계속 이어졌고,
멀리서 동해안 쪽 바람이 불어오는 것 같았다.
이제 나에겐
해변 위,
무언가를 분별할 수 있을 만한 거리와 시야가 필요했다.

그리고…
이제 이 휴대폰도,
곧 버릴 준비를 해야 했다.



[소설. 큐비트 프로토콜] 4. 절박함 속의 믿음

https://brunch.co.kr/@bestaicoach/141

keyword
작가의 이전글[소설:큐비트 프로토콜] 4. 절박함 속의 믿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