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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고스트 프로토콜] 6. 맛도, 향도 없는 기다림

by 백기락

안목해변.
몇 해 전, 카페 창업을 꿈꾸던 나는
전국 곳곳의 카페를 찾아 두 달 가까이 떠돌았다.
누군가는 뜬금없다 했고,
누군가는 부럽다 했지만,
나에겐 그 시간이
어쩌면 현실을 피할 수 있었던 가장 멋진 도피처였다.

그 중에서도 강릉,
특히 안목해변은 특별했다.
탁 트인 바다,
뺨을 스치는 동해의 거친 바람,
그리고 해변과는 약간 거리를 둔 듯 세워진 카페들.

나는 그 풍경이 좋았다.
사람들과는 적당히 거리를 두고,
하지만 언제든 바다와 마주할 수 있는 거리.
마치 지금 내 심경 같았다.

차를 해변 가까이에 세우고,
내가 예전에도 한참 앉아있던 그 카페로 들어갔다.
2층 창가 자리.
이 자리는 여전히 비어 있었다.
창 너머로 보이는 방파제 끝,
그 끝자락에 서 있는
흰색 3층짜리 카페 건물을 바라보며
나는 조용히 숨을 골랐다.

그 사람을 그곳으로 부를 생각이었다.
3층 베란다에 서 있으라고.
나는 이곳에서 충분히 멀리서 그를 지켜볼 수 있었고,
필요하다면 도망칠 수 있는 출구도 있었다.

강릉 시내로 들어오자마자
나는 휴대폰 전원을 껐다.
그리고 짧은 메시지를 남겼다.

"약속 시간 1~2분 전에 폰을 다시 켤 겁니다.
그때, 연락드리죠."

이 모든 게 영화 같은 흐름이었다.
하지만 이건 영화가 아니었다.
현실이었고, 지금 내가 숨 쉬는 이 공간은
내 목숨을 걸고 만들어낸 안전지대였다.

카페라떼를 주문했다.
진하게 로스팅된 원두 향이 코끝을 스쳤지만,
이상하게도 아무런 맛도, 향도 느껴지지 않았다.
손에 든 잔은 따뜻했지만,
마음은 얼어붙은 채였다.

내가 이 사람을 믿어도 되는 걸까.
정말 나를 돕기 위해 나타난 사람일까.
아니면… 그들보다 한 발 빠른, 또 다른 위험일까.

불안과 갈망이 동시에 몰려왔다.
지금 이 순간,
도움이 절실했다.
누군가라도, 단 한 사람이라도
믿을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

그리고 그 사람일지도 모른다는
이상한 희망이,
천천히 내 마음속에 스며들고 있었다.

시계는 약속된 시간을 향해 천천히 흘러가고 있었고,
나는 카페 창가에서
조용히, 그리고 아주 천천히
잔을 입에 가져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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