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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고스트 프로토콜] 7. 믿어볼 수 밖에 없었던

by 백기락

그의 이름은 윤강현이라고 했다.
처음 들었을 땐, 당연히 가명일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 상황이었고, 그런 시대니까.

하지만 놀랍게도,
그건 그의 실명이었다.
나는 나중에서야 그 사실을 알게 됐고,
그 순간 묘한 감정이 스쳤다.

“이름이라도 제대로 알려야
당신이 날 믿을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그는 그렇게 말했었다.
상황은 알 수 없지만,
어쩌면 직감적으로
지금 이 자리에서 믿음을 얻지 못하면
모든 게 끝날 수 있다는 걸 알고 있었던 것 같았다.

나는 여전히 2층 창가에 앉아 있었고,
그는 해변가 방파제 끝에 위치한
하얀 3층 건물의 베란다에 서 있었다.

짙은 선글라스,
검은 재킷,
꼿꼿한 자세로
카페 건물 쪽을 바라보는 그의 모습은
한 편의 장면처럼 고요하고 무거웠다.

그는 정확히 내 위치를 모르고 있었다.
하지만 분명히
**‘이 안에 내가 있다’**는 건 알고 있는 눈빛이었다.

나는 백 미터쯤 떨어진 거리에서
스마트폰의 카메라 줌을 당겨
그를 지켜보고 있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의 선글라스 너머의 시선이
정확히 나를 향하고 있는 듯한 착각이 들었다.

통화는 짧았다.
긴 말 없이, 조용히 상황을 정리했다.

“중국 스파이 조직을 감시 중이었습니다.
그리고 평소와 다른 움직임이 감지됐습니다.
그 타깃 중 하나가… 당신이었어요.”

나는 말이 나오지 않았다.
영화 속 이야기 같았고,
그런 이야기가 지금,
이 조용한 해변에서 벌어지고 있다는 게 믿기지 않았다.

“당신의 정보는 이미 우리 쪽에 확보되어 있습니다.
그 말은, 곧 그들 쪽에도 넘어갈 가능성이 높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빠르면 하루, 길어도 이틀이면
그들도 당신의 정체를 알고,
움직이기 시작할 겁니다.”

잠시 정적.
바다의 파도 소리만이 유리창을 타고 전해졌다.

“그럼… 제가 어떻게 해야 합니까.”

그는 잠시 숨을 들이쉰 뒤 말했다.

“첫째,
가까운 사람들에게 말하세요.
갑작스럽게 해외 출장을 가게 됐다고.
일이 급하다고.
연락이 당분간 어려울 수도 있다고.
누구라도, 주변에 당신을 찾으러 올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들 입장에선 당신의 지인이 ‘정보원’일 수 있으니까요.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 말이 더 무서웠다.
내 가족, 내 친구, 내 동료들이
나 때문에 위험해질 수 있다는 것.

“둘째는 폰입니다.
지금 폰은 **이미 추적되고 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최소한 전원은 꺼두세요.
가장 좋은 건… 지금 당장 버리는 겁니다.
대신, 제가 준비한 폰을 하나 드리겠습니다.”

나는 망설였다.
폰을 바꾼다는 건
또 다른 차원의 결단이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그 순간, 그가 건넨 말은
논리보다 현실적이었다.
맞는 말이었다.

“…그럼 어떻게 받아야 하죠?
제가, 당신을 직접 만나는 건 아직…”

“알고 있습니다.
접촉 없이 전달하겠습니다.
해변 주차장 남쪽 끝, 커피 배달용 바이크 두 대가 세워져 있을 겁니다.
그 중 하나의 좌석 밑,
흰색 봉투 안에 새 폰과 충전기, 간단한 보안설정 매뉴얼이 들어 있습니다.
지금 자리를 옮기세요.
그 폰으로 다시 연락주세요.”

전화를 끊고,
나는 스마트폰을 껐다.
그리고 손에서 조심스럽게 떼어냈다.
갑자기, 손이 허전해졌다.
몇 년 동안 하루도 떨어뜨리지 않았던 그 물건이
이제는 위험의 상징이 되어 있었다.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나,
카페를 나섰다.
해변 쪽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얼굴을 스쳤고,
가슴 속 깊이 쌓여 있던 불안이
아주 천천히,
형체를 드러내고 있었다.

그리고 나는,
그가 말한 바이크를 향해 차로 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잽싸게 봉투 속에 든 전화기를 집어 들고, 차를 타고 빠르게 달렸다. 심장은 수백 번씩 뛰는 것 같았고, 금방이라도 멀리서 총알이라도 날아올 것 같았지만, 다행히도, 정말 다행히도 아무 일도 벌어지지 않았다. 그렇게 한참을 달리고, 봉투 속 전화기로 윤강현 에게 전화를 걸었다.

나로선, 그렇게

믿어볼 수밖에 없었다…



[소설. 고스트 프로토콜] 7. 익숙했지만, 두려웠던 해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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