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원치 않았지만 현실이 된
차를 몰고 해변을 빠져나왔다.
바람은 여전히 거칠었고,
창밖의 풍경은 이상하리만치 평온했다.
나는 말없이,
그가 말한 방향으로 조심스레 차를 몰았다.
몇 분쯤 달렸을까.
주차장 남쪽 끝, 배달용 오토바이 두 대가 나란히 세워져 있었다.
잠시 머뭇거리다,
나는 주변을 빠르게 둘러본 뒤
그 중 한 대의 좌석 밑으로 손을 뻗었다.
봉투.
하얗고 납작한, 겉으로 보기엔 영수증이 들어 있을 법한 크기.
빠르게 집어들고,
흔적을 남기지 않도록 주의하며
차로 돌아와 시동을 걸었다.
십여 분을 달렸다.
작은 교차로를 몇 번 지나,
인적 드문 곳에 도착한 뒤
조심스럽게 봉투를 열었다.
그 안엔 스마트폰, 충전기,
그리고 간단한 보안설정 안내서가 들어 있었다.
지시에 따라 설정을 마치고,
전화번호 하나를 누르자
곧장 연결음이 울렸다.
“잘 받으셨군요.”
윤강현의 목소리는 여전히 침착했고,
나는 처음으로,
그와 실제로 연결된 느낌이 들었다.
“말씀드린 대로,
지금 쓰시던 폰은 절대 다시 켜지 마세요.
그건 이미, 누군가의 손에 들어갔을 수 있습니다.”
“네.
일단, 그…
제가 본 계좌에 대해서 말씀드리겠습니다.”
나는 천천히, 조심스럽게
지금까지 있었던 일을 이야기했다.
금액은 말하지 않았다.
하지만 ‘상당한 규모’라는 건
말하지 않아도 느껴질 정도였다.
윤강현은 말없이 내 이야기를 들었다.
그리고 한참 뒤, 조용히 입을 열었다.
“정확한 이유는 아직 파악되지 않았지만…
당신이 연루된 계좌,
그 자금…
중국과 관련된 암호화폐 해킹 자금일 가능성이 있습니다.
최근 몇 년간, 중국 쪽에서 조직적으로 암호화폐를 해킹해온 정황이 있었고,
이번 건은 그 중에서도 규모가 꽤 큽니다.”
“근데 왜, 그게 제 계좌에 들어온 거죠?”
그는 짧게 숨을 쉬었다.
“그건… 저도 아직 모르겠습니다.
다만, 당신이 열었던 그 지갑.
그 운영사가
중국 자본이 깊이 들어간 곳이라는 의심을 받고 있습니다.
실제로 최근 내부망을 통해
정부 쪽에서 ‘관심 대상’으로 보고 있었고요.”
“그럼… 우연히 내가 그 지갑을 연 게,
이 상황을 만든 건가요?”
“우연일 수도, 아닐 수도 있습니다.
문제는…
그 지갑 안에 있던 자금이,
현재 거래 기록상으로는 조회되지 않고 있다는 겁니다.
다시 말해,
공식적으로는 존재하지 않는 돈이란 뜻이죠.”
순간,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그게 무슨 뜻입니까…
지금 그 돈은… 제 것이 아닌 건가요?”
“당신 것이 아닙니다.”
그의 말은 단호했다.
“그 돈은,
어느 누구의 것도 아니어야 했던 돈입니다.
하지만 누군가가 움직였고,
그 누군가가 지금,
바로 당신입니다.”
말문이 막혔다.
그저 단순한 계좌를 열었고,
안에 있던 비트코인을 옮겼을 뿐이었다.
하지만 그 순간,
나는 거대한 어떤 톱니바퀴에 손을 넣은 셈이었다.
“지금은 일단, 그 위치에 계속 머무르세요.
추적은 없었고, 노출 흔적도 없습니다.
제가 그쪽으로 가겠습니다.
직접 만나 이야기해야 할 것 같습니다.”
나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전화기 너머의 목소리는 여전히 침착했지만,
그 말들 하나하나가
내 현실을 한 층 더 깊은 어둠 속으로 끌어내리고 있었다.
[소설. 고스트 프로토콜] 7. 믿어볼 수밖에 없었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