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그 돈이 내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정확히 말하면, 그럴 리가 없다고 믿고 싶었다.
1백만 비트코인이라니.
현실의 감각으로는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숫자였고,
계좌 안의 그 숫자는…
그저 스크린 위의 호기심이었다.
처음 그걸 봤을 때
가슴이 철렁 내려앉으면서도
어디선가 짜릿한 무언가가 지나갔다.
“문제가 되면 돌려주면 되지”
어설픈 책임감 같기도 하고,
순간의 현실 도피 같기도 했다.
정당화하려 한 건 아니다.
다만,
그 계좌에 그런 금액이 들어있게 된 것,
그걸 건드린 게
온전히 내 잘못만은 아니라고, 생각하고 싶었다.
비트코인이 어떻게 거래되는지도 몰랐던 나는
그저, 처음이자 마지막일 수도 있는 기회라고 여겼다.
영화에서만 보던 ‘탈중앙화의 자유’란 게 어떤 건지
직접 경험해보고 싶었던 건지도 모른다.
'사토시 나카모토.'
실체 없는 존재,
그러나 전 세계 경제 흐름에 그림자를 드리운 유령 같은 이름.
2100만개 중 일부는
아직도 누군가의 지갑 안에 조용히 잠들어 있다고 들었다.
나는 그런 생각도 했다.
“언젠가 그가 돌아와 거래하지 않을까?”
그걸 준비하는, 아무 의미 없는 시뮬레이션.
군에서 근무하던 시절,
구형 전산망을 다루며 느꼈던 무력함 속에서
조금이라도 더 나아지기 위해
책을 사 모으고,
외출 때마다 인터넷 카페에서 자료를 뒤지던 날들이 떠올랐다.
그땐 단순히 “더 잘 하고 싶다”는 마음뿐이었다.
보안이라는 단어를
어설프게나마 존중하려 했고,
세상은 나와 멀리 떨어져 있다고 믿었다.
하지만 전쟁은, 재난은…
예상되는 것만 일어나는 게 아니었다.
내가 그런 상상들을
웃음 섞인 이야기로 사람들 앞에서 꺼냈을 땐
다들 피식거리며 넘겼지만,
지금은 내가 그 한가운데 서 있었다.
나는 생각을 정리해야 했다.
1BTC를 현금화했던 건…
결국은 ‘확인’이 필요했기 때문이었다.
그게 진짜인지.
그 금액이 정말 내 계좌 안에 있었는지.
그리고 이상하게도,
아직도 정확히 내가 얼마를 가지고 있는지 모른다는 사실이
더 큰 혼란을 불러왔다.
100만 BTC는 잠시 내 지갑을 거쳐 갔을 뿐일지도 모른다.
아니면,
그 지갑 서비스 자체가 나를
‘미사용 계좌’라고 판단해 일종의 은닉 창고처럼 사용한 것일 수도 있었다.
기억났다.
다른 계좌로 옮겨둔 곳…
그건 국내 지갑이 아니었다.
미국 기반의 암호화폐 플랫폼.
내가 예전 테스트 용도로 만들어둔 계정이었다.
그래서 그들이 전부 추적하지 못했던 걸까.
기록상 존재하지 않는 BTC.
국경 너머에 숨어 있는 계좌.
내가 직접 접속하지 않는 한,
그 누구도 움직일 수 없는,
잠든 코인.
아이러니하게도
그 때문에 내가 더 위험해진 걸지도 모른다.
하룻밤을 넘기고
생각이 정리되기 시작했다.
한 곳에 너무 오래 머물면 안 된다.
이제는 움직이는 시점이다.
가능한 모든 추적 경로는 제거해야 했다.
차량 공유 앱을 켰다.
내가 타고 다닌 공유차량.
그것도 처리해야 했다.
그동안 남긴 주행 기록,
GPS 경로,
출입 장소 정보…
모두 누군가에겐 지도 위 핀처럼 박혀 있을 것이다.
폰은 물론,
카드 사용도 멈추고,
현금만 쓸 수 있는 환경으로 완전히 바꿔야 했다.
편리함은 위험이고,
연결은 노출이었다.
이젠, 내 몸은 내가 지킨다.
누군가의 정보망에서 살아남고 싶다면
적어도,
스스로의 ‘전략’이 있어야 했다.
[소설. 큐비트 프로토콜] 8. 원치 않았지만 현실이 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