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유차량은 그대로 두기로 했다.
추가금이 들더라도 상관없었다.
그 차는 이미 **‘추적의 궤적’**이었고,
더 이상 내 곁에 있어선 안 되는 물건이었다.
앱을 통해 회수 요청을 걸고,
지정된 위치에 세워두고는
잠시 그곳을 떠나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혹시 누군가 따라온 건 아닐까.
지금은 나 자신이 증거가 되어서는 안 되는 상황이었다.
현금이 필요했다.
조금은 위험한 선택이었지만,
가까운 은행으로 향했다.
인출기 앞에 서 있는 내 손끝이 떨리고 있다는 걸
그제서야 자각했다.
다행히,
계좌는 아직 동결되지 않았다.
남은 금액 중 일부를 분산해 인출하고,
잔액은 당분간 손대지 않기로 했다.
움직이되, 흔적은 남기지 않는다.
근처 PC방.
아무 생각 없이 컴퓨터 앞에 앉으니
의외로 마음이 조금 가라앉았다.
차가운 헤드셋과 묵직한 키보드,
무거운 의자.
익숙하면서도, 한때의 나를 떠올리게 하는 공간.
가족들에게 이메일을 썼다.
일본 출장이라고.
급하게 떠나게 돼서 연락이 어려울 수 있다고.
너무 걱정하지 말라는 말 대신,
괜찮다는 말만 몇 번 반복했다.
음성 메시지도 남겼다.
조금은 어색한 톤으로.
하지만 걱정을 덜어주기 위해 애썼다.
그리고,
AI를 활용해 만든 일본 도심에서의 내 모습.
낯선 골목, 지하철, 빌딩 앞, 편의점.
모두 가상의 나였다.
하지만 누구보다 현실처럼 보이는 ‘연기된 존재’.
혹시라도,
그들이 누군가를 미행하거나
내가 어디에 있었는지를 의심하게 될 경우를 대비한
미끼와 혼선.
가볍고 싼 노트북 하나를 장만했다.
지금은 접속하지 않겠지만,
언제든 다시 암호화폐 계정에 접근해야 할지도 몰랐다.
물론 지금은 그럴 생각 없다.
하지만…
그건 나만의 백도어였다.
이제,
어디론가 움직여야 했다.
지방을 떠도는 것,
그 자체가 오히려 더 주목을 받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차라리,
사람들이 더 많은 곳,
익명성이 진짜 작동하는 공간…
서울.
윤강현에게는 구체적인 위치를 말하지 않았다.
그저,
“복잡한 도시로 들어가려 한다”고만 전했다.
그 순간,
그의 말투가 약간 멈칫한 듯 느껴졌지만
곧 조용한 동의가 돌아왔다.
“잘한 선택입니다.
도심 안에서 일정 시간 움직이지 않으면
되려 눈에 띄지 않죠.
하지만 절대,
한 곳에 너무 오래 머무르진 마세요.”
알겠다고 답했다.
그리고 마음속으로는,
서울에서 윤강현을 직접 만나겠다는 생각을 굳혔다.
내가 더는 쫓기기만 할 수는 없었다.
정보를 모으고,
정확히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내 눈으로 확인해야 했다.
고속버스터미널.
티켓을 끊고, 사람들 사이에 섞였다.
오랜만의 익명성.
마스크를 쓰고, 모자를 푹 눌러쓴 채
차에 올랐다.
좌석에 앉고,
허리를 깊숙이 기대자
온몸에 갑작스러운 탈진이 밀려왔다.
며칠 동안 이어진 긴장.
단 한 번도 편히 자지 못했던 밤들.
그 모든 게,
버스 엔진의 진동 속에서 무너졌다.
눈을 감는 순간,
거짓말처럼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소설. 큐비트 프로토콜] 9. 결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