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신문이 신문 같지 않고, 기사가 기사 같지 않는 어느 날...
고등학교 시절이었다. 무섭기로 그지없는 교련 선생님의 호출을 받았다. 다음 주까지 글을 한 편 써 와.... 써냈다. 어길 수 있는 지시가 아니었다... 그리고 난 교내 신문기자가 되었다.
알고보니 소설가셨고, 사설을 쓰시는 분이셨다. 교련 선생님보다 기자, 소설가, 언론인이 더 맞을 것 같은 분... 1년에 두 번 발행하는 전통의 학교 신문을 제작하는 데 필요한, 학년별 2명의 기자 선출에 내가 선정된거였다. 물론 나보다 더 잘 쓰는 친구들이 있지 않았을까, 싶다. 선새님의 지시는 학급별 반장, 부반장에게만 해당되었으니까.
돌아보면 참 잘 배운 것 같다. 글쓰기에 열심이기도 했고, 재미도 있었다. 나중에 학교 역사상 처음으로 신문이 일주일 늦게 나오는 대참사의 장본인이 되기도 했지만, 그 경험이 이렇게 수십년 이어질 줄을 그땐 몰랐다.
그때 배운 것 중 아직도 기억나는 것 하나, 육하원칙.
누가, 언제, 어디서, 무엇을, 어떻게, 왜...
여기서 중요한 게 하나 있다. 바로 글 쓰는 기자가 주인공이 아니라는 것. 오로지 기자는 제3자이고 전달자일 뿐이다. 기사라는 형태를 통해서...
이유야 어떻든... 요즘 기사의 주인공은, 대부분 기자다. 그리고 점점 기자가 생각하는 이유, 언론사가 생각하는 이유가 점점 커지고 있다. 아니라고? 기법은 많다. 기자나 언론사가 맘에 들어하는 전문가 한 명을 골라 인터뷰를 실으면 그만이다. 그러면 기자의, 언론사의 마음이 제3자 전문가라는 형태를 띄며 실린다... 예전엔 적어도 두 개의 상반된 전문가를 섭외하기도 했는데, 요즘 그런 기사 찾긴 참.. 어렵다.
슬퍼진다.
어느 새 우리는 언론사를, 기사를 신뢰하지 못하는 시대를 살게 되었다. 아니, 언론사와 기사에 오염되는 시대를 살고 있다. 나름 객관적이 되려면 독자의 역량이 높아져야 하는 시대가 된 셈이다. 기자의 사명, 언로사의 사명 이런 거 사라진 지 오래다... (물론 어딘가에, 분명이 이를 지키는 이들이 있을 거라 믿고 있다, 악의 도시 고담에도 고든 형사가 있는 것처럼...)
글을 오래, 많이 읽다 보면, 거기에 직접 쓰기를 수십 년 해보면 행간에서, 문맥에서 그 사람의 마음이 느껴지기도 한다. 어쩌다 그런 마음을 갖게 되었을까... 그게 참 궁금해진다. 기사를, 언론사를 외면한다고 될 문제도 아닌데, 어떻게 읽어가야 할지... 참 고민 되는 시절이다...
Docu Producer,
백기락 Dre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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