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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마 설마 했던 일이 일어났다.

이 어두움에 이름을 짓지 않았어요

by 최고담


엄마의 두 번째 이혼을 알게 되고, 며칠 마음이 심란했다. 이제는 얼굴도 희미해진 그 사람에 대한 생각이 엉기고 설켜 응어리가 되어버린 건 아닌가 생각했다.


그 마음에도 이름표를 붙이지 못하고 그렇게 시간이 흘렀다.


우리 집 초딩이들의 방학중이었고, 내 마음이 그런 것 과는 별개로 삼시세끼 밥 차려주고 내 공부하고 아이들 부족한 공부 봐주다 보면 하루가 어떻게 지나가는지도 모르게 하루를 마무리했다.


그렇게 설날 연휴가 다가오기 며칠 전 전화벨이 울렸다.


ㅇㅇ아. 그 여자가 진짜 신청했어


전화를 건 사람은 아버지였고, 아버지가 말하는 그 여자는 엄마였다.




국민연금 기여도 분할제도.


아버지는 팍팍한 삶에서도 본인의 노후를 국민연금으로 준비했었다.


직장인이던 시절엔 필수였지만, 이후 개인 사업자가 되면서는 선택이었을 텐데, 자식 둘 홀로 키우면서도 꼬박꼬박 부어 노후 준비를 했던 것이다.


그 선택은 아버지가 아프신 후 일을 그만둘 수 있게 해 줬고, 친정오빠나 나로 하여금 경제적으로 아버지에 대한 부담감을 갖지 않고 순수하게 걱정할 수 있게 만드는 고마운 것이었다.


그러다 4년 전, 화가 난 목소리의 아버지는 세상에 이런 일이 어딨냐며 전화를 했었다.


처음으로 국민연금 기여도 분할제도에 대한 안내 우편을 받은 날이었다.


국민연금 기여도 분할제도는 혼인 중에 배우자가 국민연금을 납부했다면, 배우자가 납부할 수 있도록 납부하지 않은 사람(즉, 우리 집으로 치면 엄마)에게도 국민연금을 내는 데 기여를 했다고 인정하는 것이다.


(참고로, 혼인 기간은 5년 이상인 부부여야 한다. 우리 집의 혼인기간은 83년도부터 99년도 16년 정도였다)


아버지가 60세부터 수령할 수 있는 국민연금 중.


엄마가 만 60세가 되는 달이 되어 (기한은 효력이 생기는 해를 기준으로 3년 안에) 신청을 하면, 아버지가 받던 연금액을 줄이고 기여도만큼 엄마에게 돈을 지급하게 되는 제도였다.


집을 나간 후, 단 한 번에 연락이 없었고 찾아오지도 얼굴을 본 적도 없었다.


우리 집이 곪아 썩어갈 때, 엄마는 그 어떤 것도 하지 않았다. 양육비 한 푼도 받은 적이 없었다.


사람이라면 해야 했던 어떠한 도리도 없이 26년이 지난 것이다.


아버지는 이걸 왜 줘야 하느냐며 화가 머리끝까지 났다. 오히려 받아야 하는 건 우리지 왜 그 여자가 받아야 하나며 억울해하셨다.


그 당시에도 여기저기 문의해 봐도 신청한다면 뾰족한 방법이 없다고 했다.


그러자, 아버지는

“설마 하니 그걸 신청하겠냐? 사람이 염치가 있지?”


그때 내 대답은 그랬다.


“염치를 챙길 여유가 없으면 신청할 수도 있지, 염치라는 것도 여유가 있어야 하는 건데 앞가림도 안 되는데 그걸 신경 쓸 상황이 있을 리가 있겠어?”


그리고 그 일이 정말로 일어난 것이다.


2025년 8월이면 신청할 자격조차 사라지는 때였는데, 이제와 돈을 받겠다고 신청했단다.


당신은 사람이길 포기했구나.


이제 더 이상 엄마에게 드는 마음이 애증이 아닌 증오가 되겠구나. 깨달았다.


나는 이제 정말로 당신을 미워하겠어.

당신은 사람이 아니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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