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어두움에 이름을 짓지 않았어요
아버지 서류를 떼어보다, 우연히 엄마의 두 번째 이혼을 알게 됐다.
우리를 버리고 간지 3년 만에 10살 어린 남자와 재혼했고, 혼인신고를 하자마자 아이를 낳은 것으로 보니 3년보다 더 전에 만났을 것으로 생각된다.
내게 아버지가 다른 동생이 생겼다는 일은 꽤나 충격적이었다.
얼굴도 모르는 그 아이를 나는 몇 번이고 질투했었다.
그 아이는 여자아이었는데, 아마 그래서 더 궁금하고 부러웠던 거 같다.
물론, 여자아이든 남자아이든 키우는데 각각 신경 써야 하는 부분이 있겠지만
내 경우는 남자들(아빠, 오빠) 사이에 나 홀로 여자아이라서 헤쳐나가는 길이 만만치가 않았다.
아버지는 좋은 사람이었지만, 여자는 왜 신발이 여러 개가 필요한지 이해하지 못했다.
옷이 왜 스타일이 다르게 여러 버전이 있어야 하는지도 그랬다.
그게 낭비라고 이야기했기에 나는 옷욕심이 별로 없이 자랐는데, 우리 집 딸들 옷은 이거 저거 입혀보고 싶은 거 보니 서러웠던 거 같다.
결혼을 하고도 삶이 너무 팍팍해 새 삶을 살고 싶어 개명을 했었다.
결혼까지 다 한 마당에 무슨 개명이냐 싶겠지만 그때나 지금이나 그저 살고 싶어서 치는 발버둥이었다.
개명이라는 게 거창하게 큰 뜻이 있었다기보다 그냥 새 이름을 갖고 지난 삶과 다르다는 것을 객관적으로 딱 구분 짓고 싶었다.
개명을 진행하며, 엄마를 만나볼까도 했었다. 지난 시절을 정리하는 의미로 그 생각에 다다랗지만, 끝내 만나지 않았다.
두려워서.
그 사람이 잘 살아도 못살아도 싫을 거 같았다.
만약 잘 살면, 얼굴도 모르는 그 여동생과 행복하면 그 상황이 너무 화가 날 테니까.
버려진 내가 불쌍하고 버린 엄마가 행복하다니 이건 너무 불공평하니까.
그렇다고 엄마가 너무 불행하게 산다면..
뒤돌아서 쌤통이다 후련하다 할 수 있느냐 물으면 그것 또한 못할 거다. 왜 그러냐 물으면 그저 그냥 그게 나니까.. 바보 같게도 그랬다
철저히 미워하면서도 그립고 보고 싶은데 보기 싫은 엄마는 나에게 애증 그 자체였다.
그래도 재혼해서 애는 잘 키우고 살겠지.. 하고 덮어두고 살았는데 그 여자아이가 20살이 되자마자 이혼한 것을 알게 되었다.
그래도 성인이 될 때까지 기다려 준 건가 싶어 그 여자아이가 부럽다가도
왜 20년이나 살고 이혼했을까 싶어 궁금하다가
엄마의 가족관계 증명서 아래 있는 여자동생의 이름을 물끄러미 쳐다봤다.
흔하지 않은 이름.
sns에 찾으면 나올 거 같다는 생각에 다다르자 빠르게 여기저기 검색을 해보기 시작했다.
그리고 마침내 단 하나의 사진을 찾아냈다.
아니 알 수밖에 없었다. 그 아이는 엄마와 닮았고 엄마를 닮은 나를 닮았으며, 나를 닮은 우리 막내와 닮아있었다.
그 사진을 보며 물끄러미 질문이 떠올랐다.
20살까지 받은 엄마의 사랑은 어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