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어두움의 이름을 짓지 않았어요.
2023년에 결혼한 친구가 있다. 나는 2013년도에 결혼을 했으니 결혼으로 따지면 내가 10년이나 선배인 셈이었다.
처음으로 축사를 할 정도로 소중했던 친구.
그 해에 예쁜 딸을 낳아, 자주 볼 순 없지만 사진으로나마 사랑스러운 조카를 훔쳐보는 일은 종종 나에게 힐링이 되었다.
며칠 전 그 친구에게서 카톡이 왔다.
맞벌이로 친정 부모님께 아이를 맡기고 일을 하던 친구의 회사가 이사를 가는 바람에 출퇴근 시간이 말도 안 되게 늘어난 상황이었는데,
이직을 하기에도 애매하고 이럴 바엔 둘째를 낳는 게 나은가 싶어 고민하는 내용이었다.
나에게도 아이가 둘 있으니, 생각이 어떤지 물어보고 싶었던 모양이다.
아마도 긍정적인 대답을 원했을지 모르지만, 나는 둘째에 관해서 신중하길 권했다.
아이를 키우는 것은 현실이었고, 하나보다 둘이 되면 커갈수록 생활비가 만만치 않은 게 사실이니까.
더군다나 그 친구는 맞벌이를 꼭 해야 하는 상황이었고, 남편의 육아 참여도가 높지 않았다.
우리 집 역시 아이들이 한참 손이 많이 가던 시절에 남편이 너무 바빠 홀로 아이들을 봐야 했는데,
하나일 땐, 그나마 일대 일이니까 참고 견딜 수 있었지만 둘이 되는 순간 육아 난이도는 정말 지옥 그 자체였다.
물론 친구는 친정이 가까이 살기에 좀 더 여건이 나을 수도 있으나, 그만큼 친구가 가지고 있는 경제적 부담감도 무시할 수 없었다.
거기에 첫째 아이를 낳고 육아휴직 중에 친구남편과 친구의 부부싸움에 대해 들은 적이 있어, 마냥 첫째가 예쁘다고 낳았다간 경제적 문제에서 크게 다툼이 날 거 같아 걱정이 되었다.
낳지 말라는 말은 아니었고 그저 그런 부분을 미리 논의하고 갖는 게 더 좋을 거 같은 마음에 한 이야기였는데 괜한 오지랖을 부렸나 싶은 순간.
친구가 이야기를 덧붙였다.
너랑 비슷하게 결혼한 내 친구들 보면 요즘
애들 어느 정도 키웠다고 맨날 놀러 다니더라.
나이 어릴 때 낳아서 이제 너도 편해질 법 한데,
넌 맨날 뭘 도전하고 공부하고 노력하잖아.
네가 이 문제에 대해 얼마나 고민하고 열심히 하는지 알고 있어.
이 이야길 들으니 뭔가 멍 해졌다.
아이를 낳고 키우며, 남편이 벌어오는 돈으로 애들 키우며 사는 게 당연하다고 여긴 적이 없었다.
남편이나 나나 기반을 다져두지도 못하고 조금 이른 나이에 결혼했고, 아등바등 여기까지 왔다.
그나마 나 자신에게 최면을 걸었던 건, 남들보다 빨리 결혼해서 아이들이 크면 그나마 내 나이가 젊다는 것 하나뿐.
그렇게 청춘을 갈아 아이들을 키웠으나, 내게 사회적으로 남은 건 아무것도 없다는 허탈함.
현모양처 체질은 아니었는지, 남편이 벌어다 주는 돈으로 사는 게 내내 목에 생선가시가 걸린 듯이 불편하고 칼칼했던 결혼 생활.
그래서 악착같이 계속 무언가를 했었다. 지금도 하고 있고..
쉬지 않고, 배우고 해 보고 나아가 보려 발버둥을 쳤었다. 하지만 결과는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가는 모래알처럼 잡히는 것 없이 그렇게 흘러가버렸다.
지친 마음에 침대에 누워 천장을 쳐다보다가.. 생각했다.
이럴 거면 그럴 시간에 좀 놀걸
다시는 후회 안 할 정도로 신나게 누릴걸
올해 우리 집 막내가 초등학교 2학년.
이제는 더 미룰 수 없이 일을 시작해야 했다.
그렇게 뭐라도 일을 시작하면 다신 쉬지 못하고 일을 해야 할 텐데.. 그렇게 일을 다니게 된다면 나이 들어 은퇴할 때까진 쉬지도 못할 텐데..
무엇을 위해 그렇게 아득바득 노력했나 싶어..
현타가 가득한 그런 날. 자괴감이 감싸던 그 생각들이 나를 갉아먹고 슬럼프가.. 심해지던 그때..
그래도 친구가 건넨 그 말에서 묘하게 위로를 받고 말았다.
난 현실이랍시고 덮어두고 널 응원해주지도 못했는데,
바보같이 열심히 사는 내가 대단하고 멋지다는 듯이..
근데, 친구야 네가 보던 것처럼 그런 거창한 게 아니었다?
난 그냥 살려고 그런 거야. 멋있는 그런 건 없었어.
그렇게 하지 않으면 정말 죽을 거 같았거든.
내가 그렇게 사라져 버릴까 봐 그대로 침몰할까 봐
한없이 우아해 보이는 백조가 물 밑에서는 미친 듯이 발을 휘젓듯 그런 거 말이야.
아니 백조도 아니었을까. 그저 미운 오리새끼 였는지도 모르겠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