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모든 역할의 무게가 버거울 때

이 어두움의 이름을 짓지 않았어요

by 최고담


착한 아이로 산다는 것

지겹고 버거운 짐이 꽤 무거웠다.


엄마가 나간 후 방황하는 오빠 지쳐가는 아빠 사이에 홀로 서있던 여자아이.


사랑받고 싶고 응석을 부리고 싶었으나, 그 이야기는

메아리로도 응답해 주는 이가 없었다.


매일같이 꿋꿋이 살고 있으면서도 이게 사는 건가 싶었던 그때.


나라고 왜 어두움이 없었을까.


나도 내 맘대로 하고 싶었으나, 그러기엔 아빠가 눈에 밟혔고 착한 딸이 되어야 한다는 무게에 짓눌려 있었을 뿐.


아니 어쩌면 그 무게가 나를 살게 했는지도 모르지.


그 무게가 있어 아래로 추락하지도 위로 올라가지도 못하고 배에 닻처럼 그렇게 그 자리에 있게 했는지도


시간이 수십 년이 지난 요즘도 그럴 때가 있다.


딸이라는 무게가 버거울 때.

아내라는 무게가 버거울 때.

나 자신이 버거울 때.

엄마라는 무게가 버거울 때

며느리라는 무게가 버거울 때

올케라는 무게가 버거울 때


문제가 생기면 내가 해결해 주겠지 생각하며 내게 맡겨둔 양 넋 놓고 쳐다보는 눈동자를 마주할 때


깊은 어두움 아래로 빠져버리고 싶을 때가 있다.


누군가 나에게 신기하다고 했었다.


어떻게 그런 환경에서 이렇게 잘 자랐느냐고, 반은 천성이 그랬을 거고 반은 그 이외의 다른 방법을 몰랐던 것이다.


오히려 그래서 지금이 더 위험하다.


아는 것이 너무 많아 위험하다. 바닥이 꺼지는 거 같은 깊은 어두움에 간신히 버티고 서있다.


이런 나를 옭아매는 것은 엄마였다.


나는 엄마같이 아이들을 버리지 않으리.

나같이 자라게 하지 않으리.


그래서 이번에도 모르는 척하는 것이다.


저 어둠이 무엇인지 애써 모르는 척 이름을 붙이지 않는 것이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22 설날에 마주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