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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설날에 마주한

뒤늦게 깨닫는 아빠마음

by 최고담


최근 몇 년간 아버지는 명절이면 시골에 내려가시곤 했다. 내 입장에선 아무래도 당일엔 시댁에 가다 보니 혼자 집에 계시는 것보다 그렇게 시골집에 계시는 게 마음이 좀 편하기도 했다.


무슨 마음이셨는지 올 설날은 시골에 안 가겠다고 하시기에, 우리 가족 모두 설 전날에 친정을 가게 되었다.


결혼 12년 차, 이제는 좀 익숙해 질만도 하건만 아버지는 사위가 온다고 하면 부쩍 먹을 것을 신경 쓰기 시작했다.


물론, 내 입장에서도 시어머님이 차려주던 상차림과 아버지가 차려주는 상차림은 차이가 많이 난다.


그럼에도 마음만은 차이가 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을까?


요리라고 하기도 애매해 보이는 그 음식들이 남편 눈엔 어찌 보일지 모르겠지만,


내 눈엔 좋은 것, 맛있는 것들을 꽁꽁 쟁여뒀다가 귀한 대접 해야 할 때만 꺼내오는 음식들이었는데..




그렇게 한바탕 식사가 끝나면 둘러앉아 티브이를 본다.


별 것 없이 그저 보는 티브이인데도 아버지 얼굴엔 행복이 가득하다. 티브이를 보고 앉아있는 손녀들 구경에 시간 가는 줄 모르는 것 같다.


그러다 아이들 키를 적어뒀던 안방 벽지 한편으로 아이들을 불러 키를 체크한다.


소소하게 저번보다 많이 컸네, 칭찬을 해주며 아이들을 마음에 새기는 것을 좋아하는 아버지.


볼만한 프로그램이 없어지면, 영화를 찾아본다. 아이들이 어려 장르에 제한이 있긴 하지만 그래도 개중 괜찮아 보이는 것을 찾아낸다.


이번 설에 같이 본 영화는 2015년작 장수상회라는 영화였다.


이 포스터 안에 있는 박근형 배우님의 모습이 친정아버지와 꼭 닮아있기 때문에 끌렸던 것도 있고, 친정오빠가 이 영화를 보고 아버지 생각이 많이 들었다기에 보게 되었다.


나는 이 영화를 보는 내내 울지 않기 위해 딴짓을 했고, 아버지 눈에도 슬픔이 깃들었다. 보는 내내 다른 어떤 병 중에서도 저것만은 걸리지 않길 바란다고 하셨다.


정말 고약하고 몹쓸 병이 틀림없었다.


그 병의 이름은 치매.


문득 저 주인공이 우리 아빠라면.. 등골이 오싹해졌다. 이 영화가 그 어떤 영화보다 공포스럽게 느껴졌다.


아빠 인생을 전부 바쳤던 우리를 잊어버리면, 아빠는 어떨까.. 혹시 후련하진 않을까..? 그런 생각에 입안이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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