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어두움에 이름을 짓지 않았어요
집 나간 엄마가 국민연금 분할제도 신청을 한 후로 내내 스트레스가 최고조로 올라갔다.
가뜩이나 감정적으로 힘든 상태에서 이 일이 터져버리니 머릿속이 엉망진창이었다.
이 얘기를 들은 친정오빠의 분노와 아버지의 심란함이 나에게 압박으로 다가왔다.
한편으론 진짜 이걸 왜 줘야 돼? 너무 주기 싫어 이런 생각을 하다가
절차 행정처리 변호사 소송 이런 생각을 떠올릴 때면 다 때려치우고 아무것도 안 하고 싶었다.
알려주는 정제되지 않은 날것의 정보들이(‘이렇데 저렇데 이거 확인해야 돼 ’)이런 말들 나를 옥죄고 숨을 못 쉬게 단단히 쥐고 있는 기분이었다.
처음엔 연금을 안주는 방법에 꽂혀있었다.
소송을 걸어야 하나 아니면 아버지가 못 받은 양육비 청구를 하는 게 나은가 머리를 굴리다가 변호사 상담을 받는 것이 낫겠다 생각했다.
그전에 내용을 미리 작성하여, 정확히 전달할 필요가 있었다.. 그때 상황 우리에게 유리한 것들.. 기타 확인 사항 다른 질문들 등등
작성하는 내내 이걸 변호사한테 다 설명하고 말해야 한다니 명치가 꽉 막힌 기분이 들었다.
진짜 이대로 소송을 해야 하나? 낮은 확률에 변호사 얘기만 듣고 휘둘리는 건 아닐까? 어디까지 알아보고 가야 만만해 보이지 않고 객관적으로 들을 수 있을까? 꼬리에 꼬리를 무는 질문을 하다가
문득 ‘이런 고민을 왜 나 혼자 전전긍긍하고 있지?‘에서 또 여러 감정이 밀려왔다.
결국 미루고 미루다 내가 할 수 있는 걸 하자 하고 여기저기 물어보고 생각을 정리했다.
다행히 조금 더 덜 힘든 방법으로 조언해 준 언니들이 있었는데 그 방법이 제일 합리적일 거 같아, 마음의 짐이 반으로 줄어든 기분이라 고마웠다.
반으로 줄었어도 일은 일이었다.
월요일이 되면 전화를 어디 어디하고 뭘 물어보고, 해야 할 생각에 머리가 복잡했던 것도 있었고
내내 다른 쪽으로 신경 쓰였던 부분이 마음을 갉작거리고 있었다.
엄마가 집을 나간 일은 우리 모두 같이 겪은 일이었다. 나는 그 일의 피해자였고, 큰 상처였다.
하지만 그 이면엔 그런 생각이 늘 있었다.
이 모든 상황을 엄마 입장에선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다는 것.
철저히 내 기억 + 아버지 입장이었기에 객관적이지 못하다는 생각을 했던 거 같다.
그래서 사실은 내가 모르는 엄마의 사정이 있진 않을까? 생각했었다. 물론.. 죄가 사라지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이해는 해볼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그런데, 엄마는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을 했고, 그 행동에 화가 나면서 동시에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절망이 생겨났다.
‘나쁜 마음이 아니라 이걸 신청할 수 없을 정도로 정말 바닥이라면? 염치를 챙길 수 없을 정도로 엄마 상황이 최악이라면..?’
그걸 마주하고 내가 마음 쓰지 않을 수 있을까?
혹은 그게 또 다른 내 족쇄가 되진 않을까?
이해할 필요도 없는데, 이해해 보고 싶은 건지 사실은 엄마를 이해하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그저 그렇게 잊히길 영영 내 인생에서 더 이상의 어떠한 영향력도 갖지 말길 바라고 바랬었다.
그런데, 정말 엄마를 마주한다면 그게 엄마의 최악이라면 그걸 내가 잊고 괜찮아질 때까지 난 견딜 수 있을까
그래서 그냥 놓기로 했다.
더 이상 내 인생에 당신의 자리는 없으니.
당신이 그 돈을 무슨 염치로 신청했든 말든 상황이 어떻던 그냥 최악이란 사실만을 기억한 채로
당신을 영영 떠나보낼 거야.
당신 손길 없이도 잘 자랐다고 조금의 위안도 주지 않을 거야. 마주하지 않을 거야.
그냥 그 돈 받고 받으면서도 내내 우리한테 미안하면서 살길 바랄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