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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나 같은 엄마가 있었으면 좋겠다.

이 어두움에 이름을 짓지 않았어요

by 최고담


엄마가 집을 나간 매 순간 그랬겠지만, 늘 엄마 있는 아이들이 부러웠다. 특히 시기를 따지자면 고등학교 때 좀 사무치게 부러웠던 거 같다.


고등학교를 재수도 없게 22 지망이 되어버린 순간부터, 첫 단추가 잘못 꿰어진 건 아닌가 싶더니…


멀기도 더럽게 먼데 신설 학교라 교복이 없었다.


교복이 없다는 건 무엇을 뜻할까..

가난이 숨겨지지 않는다는 소리였고, 챙겨주는 이가 없다는 게 눈으로 티가 난다는 것이었다.


그나마 교복이 있을 땐 세탁 좀 잘하고 가방 신발 정도만 잘 정돈해도 내가 말하지 않으면 엄마가 있는지 없는지 티가 나질 않았는데,


사복을 입게 되는 순간 초등학교의 악몽이 떠오르는 듯했다. 엄마 없는 애라는 표식을 이마에 붙이고 다니던 그때..


그나마 그때보다 나은 점은 내가 머리를 묶을 수 있어서 짧은 머리로 안 자르고 알아서 묶을 수 있다는 거 정도?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는 교복으로 어찌어찌 연명하고, 주말에는 밖에 나갈 때마다 그나마 내가 가진 것 중 에이스들만 추려서 입다 보니 옷도 거기서 거기.


새 옷은 사러 간 기억이 희미하고, 대부분은 고모네 언니들에게 물려 입는 것들 중에 그나마 내 눈에 보기 예쁜 거, 몸에 맞는 거, 상태 괜찮은 걸 추려서 옷장에 넣어뒀지만.. 나가려고 보면 고르고 골라 비슷한 옷들 뿐이었다.


그래도 주말엔 대부분 집안일을 하는 날이니 외출이 잦지 않아 중학교 3년 동안은 그럭저럭 버텨왔었다.


그런데 고등학교가 교복이 없다니..


결국 교복이 선정되기 전까지 똑같은 루틴이 반복되었었다.


처음엔 격 없이 친해졌던 애들도 점점 사는 환경 입는 옷차림으로 그룹이 나뉘더니 결국 나는 어디에 끼기도 뭐 하게 덩그러니 남아버렸다.


(워낙 눈치를 많이 보니, 여자애들 사이에 보이던 신경전과 나를 거리 두고 싶어 하던 눈빛을 알자마자 그냥 조용히 떨어져 나왔다.)


그때는 엄마가 너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집이 넉넉하진 않아서 옷은 비슷할지 몰라도 돌아온 집이라는 곳이 휴식이길 바랐다.


그리고 우리 집이 휴식이지 않은 이유는 엄마가 없어서라고 단정 지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때는 좀 환상이 있었던 거 같다.


엄마만 있으면 집이 따듯할 것이고 드라마에서 나오는 그런 집처럼 될 거라고 생각했으니까.


그러다 그 환상이 깨진 건 고2 때 사귄 친구들 덕분이었다. 매일같이 엄마랑 싸우던 친구가 있었는데 , 난 그걸 들으면서도 ‘참 배부른 소리 한다’라고 생각했다.


그 당시엔 나도 참 바보 같았다. 세상엔 다양한 엄마들이 있다는 걸 알지 못했다.


엄마 = 희생정신 /무한사랑/ 절대적 내편 이런 수식어들이 꽉 들어있어서 모든 엄마가 그런 사람일 텐데, 난 엄마가 없어서 누릴 수 없다고만 생각했으니까.


사실은 엄마가 있어도 그렇지 않은 집도 많았고, 내 눈에는 한없이 괜찮아 보이던 친구 엄마들도 사실은 자식을 자신의 소유물 취급하던 집도 있었다.


진짜 내가 갖고 싶었던 건 엄마가 아니라 그냥 나를 지지해 주고 응원해 주는 사람이었다는 걸 그때는 미처 알지 못했다.





예전에 라디오스타에 어떤 연예인이 나와서 자신은 제일 큰 딸이어서 부모님의 사랑을 못 받고 자라 늘 사랑이 그리웠노라고 이야기 한 사람이 있었다.


그래서 늘 동생들에게 치이는 자신이 불쌍하고 첫째에게 오는 부담감과 중압감에 너무 힘들었노라고 이야기했다.


그러다 문득 나도 엄마가 날 좀 챙겨줬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다가, 그럼 그냥 ”내가 나 자신에게 엄마처럼 해주자~“라고 생각하며 엄마가 나를 챙겨줬음 하는 것을 본인에게 해주면서 마음이 좋아졌다고 말했다.


그 이야기를 들으며 조금 다르지만 비슷한 생각을 한 적이 있었던 것이 떠올랐다.


두 딸을 키우면서, 결핍이라는 단어에 꽂혀있던 시기였다. 아이들에겐 그런 결핍 주고 싶지 않았기에 아이들 앞에서 남편과 부부싸움하는 모습을 보여주지 않기 위해 노력했고, 엄마 없이 자란 내가 아이를 키우는 게 부족해 보이지 않게 부지런을 떨었다.


혹시 내가 놓쳐서 뭘 못해주진 않을까 늘 한발 내지 반발 앞서서 정보를 알아보고 찾아보고 필요한 건 미리 준비해 줬으며, 아이들 어린이집이며 학교에 갈 일이 생기면 애들 기죽지 않고 엄마가 늘 버티고 있다는 것을 누리게 해 주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또 나 자신은 뒷전이었다. 또 나 자신은 방치된 체로 그렇게 제일 마지막으로 나를 밀어버린 것이다.


곤히 잠든 아이들을 보며, 어느 날은 베개가 다 젖도록 운 적이 있었다.


아 나도 누가 나처럼 날 좀 챙겨주었으면 좋겠다. 나도 모르던 내 마음을 어루만져주고 속상하기 전에 가서 안아주고 보듬어주면서..


나도 나 같은 엄마가 있었으면 좋겠다

고 그렇게 울었다.


내게 필요한 건 친엄마가 아니라 엄마라는 자리였음을 좀 늦게 깨달았다.


내가 그 연예인처럼 할 수 없었던 이유는 명확했다.


나는 나를 사랑하지 않는다.


그 마음 깊은 곳에는 낳은 엄마마저 버리고 가는 애를 누가 사랑하겠어.


나는 나를 품어주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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