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어두움에 이름을 짓지 않았어요.
글을 쓰는 건 어릴 때부터 좋아했다. 그림 그리는 것도 좋아했고, 피아노도 좋아했다.
어릴 때는 다니고 피아노가 다니고 싶어, 거짓말로 피아노 학원에 등록한 적도 있었다.
원비를 미루고 미루다. 결국 아빠에게 발각되어 혼줄이 났다. 그때가 아마 엄마가 집 나간 지 얼마 안 돼서였던가..
집에 피아노가 있었고, 예전엔 엄마도 아빠도 내가 피아노를 치면 좋아했다. 그래서 치고 싶었다.
하지만 아빠 얼굴을 보면 입이 떨어지지 않던 초등학생이었고, 친구를 따라간 피아노 학원에서 거짓말이 술술 나왔다.
아빠에게 허락을 받았다고 한 거짓말이 점점 미루고 미뤄져 집 전화로 온 독촉 전화로 걸린 것이다.
아빠는 나를 데리고 그 피아노 학원에 가서 밀린 학원비를 결재해 주고 원장님과 싸웠다.
아무리 그래도 부모랑 연락 한번 없이 학원을 등록시키는 게 어디 있냐며 학원에선 나를 혼내지 않았다.
그리곤 집에 가서 정말 눈물이 쏙 빠지게 혼이 났고, 마무리에 아빠는 슬픈 표정으로 물었다.
“정말로 피아노 학원에 다니고 싶었던 건 아니었어?”
사실은 다니고 싶었다. 근데 아빠의 표정이 이건 안 되는 거구나 알았다.
그래서 또 거짓말을 했다.
“아니에요 그냥 친구가 가자고 해서 간 거지 괜찮아요 “
그리곤 다신 그런 행동은 하지 않았다.
예체능 쪽으로 하고 싶은 건 너무 많았다. 하지만 돈이 드니까. 재능이 있는 것도 아닌데 배우고 싶다는 이유로 말할 수는 없는 환경이었다.
(그렇다고 학원을 한 번도 안 보내주신 건 아니었다. 공부 관련으론 몇 번 다녔다)
그것들은 내 기준엔 사치라고 느껴졌기에 지레 포기했다. 아마 맞설 정도로 하고 싶진 않았던 거 같다.
그나마 좋아서 누릴 수 있는 것은 글쓰기와 만화 보기 정도?
중학교 때 한창 귀여니 소설이 유행이었고, 한 학년 후배 아이가 인터넷 소설책을 내면서 한차례 붐이 일어났다.
나름 그 영향을 받아, 소설이란 걸 써보려 했다. 하지만 초반엔 기세 좋게 나가다가 늘 끝 마무리가 잘 안 됐다.
그래도 마무리를 하든 못하든 글을 쓰는 건 참 좋았다.
그냥 좋아했다. 머릿속에 떠다니는 것은 눈에 안 보이는데 글로 써내면 그게 눈에 보이는 거 같아 좋았다.
하지만, 머릿속에 가장 크게 박혀있는 고정관념은 좋아하는 걸로는 안돼. 돈이 돼야 할 수 있는 거야.
거기다 재능이 딱히 있어 보이지도 않았다.
재능이란 정말 천재적이어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난 너무나 평범했다.
나는 반딧불 노래처럼 착각하지도 않았다. 나는 주인공이 아니라는 걸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다. 나 자신이 벌레라는 것을..
아버지가 귀에 박히게 많이 하신 말이 있었는데,
송충이는 솔잎을 먹어야 돼
나는 송충이었다. 과한 욕심을 부리면 가랑이가 찢어지니까. 그래서 참 많이 원망했다. 특출 나게 잘하는 게 없어서 사랑을 받지 못하는 거 같았다.
왜 이렇게 애매한 재능만 있을까.
딱 눈에 띄게 재능이 있으면 좋을 텐데..
그럼에도 호기심은 많아 이거 저거 도전은 늘 잘했다. 하지만 마무리는 늘 흐지부지였다.
(지금 이렇게 잘 적고 있는 브런치도 몇 번 갈아엎었다)
그도 그럴게 유행을 따라 하느라 급급했느니 그게 나에게 맞을 리 없었다. 그냥 또 그렇게 또 하나의 삽질이라 생각했다.
그리고 전환점이 된 2023년 11월. 글 기반 sns를 시작했다.
사진을 잘 찍을 필요도 어딜 많이 다녀서 과시할 필요도 없이 글로 소통할 수 있는 곳.
그곳에 둥지를 틀었다. 500자 이내에 마음 내키는 대로 쓰면 되니까 부담도 없었다.
그러다, 아버지를 생각하며 짧게 썼던 글이 처음으로 좋아요가 막 찍히면서 깨달았다.
이런 글이 사람들에게 와 닿는구나. 난 이런글은 뭔가 무거워서 사람들이 싫어 할거라 생각했는데..
나는 소설보다 내가 많이 생각하는 거, 실제로 겪은 것, 무언가 관찰하는 것 그리고 마음을 전하는 것을 잘 쓰는 사람이구나.
그렇다면, 내가 겪은 거 생각했던걸 적어보자.라고 생각하며 탄생한 것이 “뒤늦게 깨닫는 아빠 마음“이었다.
이 정도는 할 줄 아는 벌레가 되어 좋았다.
돈은 되지 않아도, 내가 좋아하고 잘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