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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에게 마지막으로 줄 수 있는 것

이 어두움에 이름을 짓지 않았어요

by 최고담


결국, 집 나간 엄마가 신청한 국민연금 신청을 막을 수 없게 됐다. 일단, 법령에 의해 조건이 충족되면 무조건 지급이라고 한다.


이의제기를 하려고 해도, 그건 혼인 기간이 신고된 기간과 맞지 않으면 조정을 해주는 것이지 지급 정지가 되는 건 아니라고 한다.


행정소송이라는 방법도 있었는데, 이 경우는 자료를 정말 세세하게 제출해야 한다.


하지만 26년도 지난 내용의 자료가 남아 있지 않았다.


가출로 인한 이혼 처리가 되면서, 재산 분할이라던지 세부내역을 찾을 수 없었고 그저 처리된 한 장의 이혼 확인서 만이 남아 있을 뿐이었다.


나는 이 사건에서 마음을 내린 지 오래였으나, 당사자인 아버지의 의견과 분노가 가득 찬 친정오빠의 의견을 조율하는데 꽤 많은 시간이 들였다.


마치 꼬리잡기 같은 상황이 며칠 이어졌다.


오빠는 아버지를 걱정했다. 우리 한테 미안해서 안 주고 싶은데 말을 못 하는 거 같다며 이야기했다.


그리고 본인의 분노도 머리끝까지 오른 상태였다.


아버지는 이 일에 내가 신경을 쓰는 것이 미안해하셨다. 애들 방학에 지금 학위를 따느라 공부를 따로 하고 있던 터라 여기에 시간을 들이는 게 싫으셨는지 그냥 마무리 짓고 싶어 하셨다.


내 입장에선 사실 이제 와서 엮이고 싶지도 않았고, 이성적으로 판단했을 때 이것이 노력을 해서 나아질 문제가 아니었기에 아버지만 괜찮다면 그냥 주고 덮어버리고 싶었다.


그렇다고, 친정오빠의 의견도 무시할 수가 없었다.


내 안에서는 이미 체념에 가까운 결론이 났지만, 친정오빠는 잊고 있던 엄마라는 땔감에 불이 붙은 꼴이었고 그의 분노는 정당했다.


안 주는 게 맞으니까. 우리 입장에선 백번 그 말이 맞았다.


때론, 내가 어쩌지 못하는 일이 세상에 널리고 널렸다는 걸 아는 어른이기에 선택을 해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친정오빠를 억지로 설득시키고 싶진 않았다.


자격이 있었으므로, 그의 분노는 합당했기 때문에.


그렇게 우리는 한참을 서로의 걱정의 꼬리를 잡고 있었다.




처음 이 우편을 들고 집에 왔을 당시에는


내 마음도 화가 가득 차서 얼른 평일이 되어 전화를 걸어야지! 씩씩거리고 있었다.


아이러니하게도 그 화가 급격히 가라앉은 것은, 전화를 기다리며 나온 안내 멘트였다.


지금 전화를 받는 직원은 아기를 임신하고 있는 임산부입니다.


‘아.. 이 사람이 무슨 죄겠어, 더더 마음을 가라앉혀야지. 욱하지 않도록 차근차근 물어봐야지.’


나에게 행운이었는지 불행이었는지 몰라도 첫 통화 이후, 4일 연속으로 휴가를 가셨는데도 오히려 생각을 해볼 시간이 있어서 여유롭게 느껴졌다.


결국 돌아오셔서도 이렇다 할 성과 없이 전화를 끊게 되었지만 괜찮았다.


오히려 안타까워해 주시며 몇 가지 방법도 제시해 주셨지만, 해당되는 것이 없었다.


그렇게 어영부영 시간은 흘렀다.


이제와 위자료나 양육지 청구 소송을 할 것인지, 지금 당장이라도 흥신소에 맡겨 엄마의 연락처라도 알아볼 거 같던 친정오빠의 분노도 점점 잦아들었다.




그 돈을 그냥 주고 말자는 결론이 나오고 나서도 며칠 속이 쓰렸다. 작지 않은 돈이었고, 그 돈이면.. 이런 생각에 아쉬웠던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더 이상 엮이고 싶지 않았다. 이제 나도 엄마를 놔버리니 결론은 간단했다.


돈은 벌면 되지만 지금의 평안은 돈으로 살 수 없었다.


이런 걸로 스트레스받을 시간에 아버지랑 한번 더 좋은 이야기를 나누고, 더 나은 이야기를 하는 것이 득이라 생각했다.


마음에 미움도 원망도 조금 한 틈도 내어주고 싶지 않다.


죗값은 분명 언제 어디서든 받을 것이라 그것만 믿기로 했다. 내가 당신에게 이제 더 줄 수 있는 것은 없다는 사실이 만족스러웠다.


이미 잃어서 사라진 딸에게 마침내 마음속 깊이 버려졌다는 사실을 지금은 알지 못하겠지만,


언젠가 죽어서라도 깨닫는 날이 오길 바랄 뿐이다.



엄마,

그렇게 끔찍이도 아끼던 당신 아들에게도 그런 마음이 있었데, 그래도 살아생전 한 번은 봐야지 하는 그런 마음.

그건 나 역시도 그랬어.


이 여리고 소중한 마음을 밟고, 잘 가세요.


오빠가 아르바이트해서 콘서트를 보내줄 만큼 좋아했던 노래


‘존재의 이유‘ 김종환 님 가사처럼


언젠가는 우리랑 함께 할 수 있을 거라 조금만 참고 기다리면 그럴 수 있으리라 믿었던 몇 년을 지나.


엄마가 흥얼거리던 갈색추억 노래처럼.

다 부질없는 희미한 기억마저도 가지고 가세요.


이게 내가 줄 수 있는 마지막 벌이야.

이번생엔 우연히라도 마주치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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