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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겐 엄마는 없지만..

이 어두움에 이름을 짓지 않았어요.

by 최고담


내게는 올해 11살 9살 딸이 둘 있다. 아이를 키우면서 참 다행이라 생각했던 건 내 자아가 강하지 않다는 점이었다.


나라는 사람에 대해 크게 감흥이 없던 터라, 내 삶의 중심에 아이를 두는 일이 크게 거부감이 없었다는 것이 다행이라 생각한다.


아이를 키우면서 내가 힘들었던 점은 내가 사라진다는 사실보다 내가 좋은 엄마가 될 수 있을까에 대한 불안이었기에


아이들이 어렸을 적엔, 내가 사라지는 것은 크게 힘들지 않았다.


너무나 감사하게도 두 딸들은 건강했으며, 때때로 아프기도 다치기도 했지만 세월 속에 미화가 된 건지 그래도 힘들었던 것보단 좋았던 것이 많이 남아있다.


특히, 아무것 없이도 나라는 사람을 엄마라는 것 하나 만으로도 온전히 사랑해 주는 존재에게 많은 위안을 받곤 했다.


아마 살면서 그런 무한한 사랑은 더 받지 못할 거 같아. 그게 두고두고 아쉬운 느낌이 든다.


마냥 어리고, 아기 같았던 아이들이었는데, 이제는 종종 위안을 받곤 한다.


특히 첫째 딸아이는 생각이 깊고 어른스러운 편이라 종종 내게 생각지도 못한 위로를 건네곤 한다.


엄마는 왜 엄마가 없냐고 당차게 물었던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엄마가 무언가 사연이 있나 보다 싶은지 진득이 기다린 지 몇 년째, 작년 말 즈음 처음으로 내 이야기를 해줬다.


엄마는 11살에 할머니가 집을 나가서 영영 돌아오지 않았다고, 근데 그게 엄마한텐 참 힘든 일이라 이야기하기 좀 어려웠노라며 설명을 했다.


내 이야기를 기다렸던 건지, 그동안 궁금했던 내용을 하나 둘 물어보았다.


질문에 대한 답변은 최대한 평온하고 우울하지도 무겁지도 않은 있는 그대로 사실만을 이야기하려고 노력했다.




처음 말한 날엔 그렇게 그 상황들만 물어보더니, 친정에 다녀오는 길에 이런 질문을 했다.


엄마는 그럼 그때에 집이든 학교든 학원이든 마음 편한 곳이 있었어?


마음 편한 곳? 그런 걸 생각할 여유 같은 건 없을 정도로 어둡고 힘들었지만


아이에겐 담담한 말투로 “음…그런 곳은 없었던 거 같은데?”라고 대답한 후 몇 초의 정적이 흘렀다.


이게 왜 궁금했던 걸까 싶어 나도 아이에게 다시 되물어봤다.


“근데 왜 그런 질문을 한 거야? 그냥 궁금해서 하는 거니?”라고 묻자.


아이는 몇 초 고민하더니 대답했다.


엄마를 위로해주고 싶어서


어쩌다 이렇게 마음이 예쁜 아이가 내게 와준 걸까, 자식에게 받는 위로는 마음이 아린 기분이었다.


여기서 울면 또 속상해할까 싶어 울음을 꾹 참고 고마운 마음을 담아 내 마음을 전해야 했다.


이미 너희들 덕분에 충분히 위로를 받고 있다고, 너희가 엄마를 많이 사랑해 주고 우리 가족이 행복해서 너무 고맙다고..


그러자 티 나게 아이의 얼굴이 밝아지며 안심된 얼굴로 속마음을 이야기했다.


엄마, 있잖아.

나는 엄마가 대단하다고 생각해.
나라면 엄마처럼 할 수 없었을 거 같아.

그냥 주저앉아서 울고 싶었을 거 같고…
집 밖으로 나가고 싶지도 않았을 거 같아.

이 이야기를 차근차근 전해오던 목소리에 만감이 교차했다.


예전에 헤어졌던 남자친구에게 내 꿈이 좋은 엄마가 되는 것이라고 말한 적이 있었다.


그러자 그 입에서 나온 대답은 “넌 보고 배운 게 그것뿐이라 고작 꿈이 그 정도네. 절대 좋은 엄마는 못될 거야 “라고 악담을 퍼붓던 그 자식에게 이걸 보여주고 싶다고 생각했다.


좋은 엄마의 기준은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적어도 내 아이에게 그동안의 사랑이 흘러서 내 아이가 나를 대단하다고 말해주는 엄마가 되었다는 것이 그 어떤 상보다 멋지게 느껴졌으니까.


그리고 그 마음을 담아 나도 이야기해 줄 수 있었다. 내가 아버지를 닮아 그리 살았듯..


아니야. 너도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거야.

왜냐면, 넌 엄마딸이니까.
멈추고 쉬어가더라도 넌 분명히 해냈을 거야.

엄마도 네 편이니까.


어린 시절 그토록 바랐던 온전한 내편인 엄마를 나는 비록 갖지 못했지만, 넌 꼭 그렇게 키워주고 싶다.


나 같은 엄마는 갖지 못했지만, 나와 같이 걸어줄 딸들이 있다는 것이.


캄캄한 어둠이 꽤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내 마음속에 언제나 봄날의 햇살이 가득한 곳이 있다.


그렇게 너희와 오래도록 같이 걷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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