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괜찮지 않아도 괜찮아야 했다.

이 어두움에 이름을 짓지 않았어요.

by 최고담


자려고 누워서 하루를 돌아본다. 가끔 너무 피곤해 생각이란 걸 1도 못하고 잠들 때도 있지만 대체로 누워서 생각하는 편이다.


모두가 잠든 시간 눈을 감아도 떠도 컴컴한 어두운 방 안에서 머릿속을 배영 하듯 누워서 둥둥 떠다닌다고 생각하면 그나마 좀 낭만적일까.


처음 이 행동을 하기 시작한 건, 불안해서였다.


오늘 내가 잘못한 건 없나, 말실수하진 않았나, 그때 왜 그랬을까 같은 다시 해봐야 아무 소용없는 후회들이 잔뜩 떠내려 오곤 했다.


모든 사람이 날 좋아할 순 없다는 것을 인정하기 전까지 꽤나 괴로웠다. 착한 아이가 되고 싶었고, 미움받기 싫었다.


지금 생각하면 미워하지 않는 것이 꼭 좋아하는 것은 아닌 건데, 이분법적 사고가 나를 참 부단히 애쓰게 만들었다.


누구든 떠나가면 영영 안 올 수 있다는 것을 너무 빨리 깨달았다.


그런데, 그 누구든에 아버지는 없었다는 것을 아버지가 아프고 난 다음 깨달았다. 왜 아버지는 그 자리에 있을 거라 생각했을까


그 이후 아버지를 생각하는 일이 잦아졌다.




다른 집에 비해 내가 아버지한테 못한 건 아니지만, 아버지 생각을 마음 깊이 되짚어 보기 시작한 것은 정말 몇 년 되지 않았다.


결혼하고 나서는 내가 너무 많은 일이 있었고, 임신 출산 육아 루트에서 허덕이느라 죄송하게도 아버지가 짐같이 느껴질 때도 있었다.


티 내고 싶지 않아서 아버지에게 솔직하지 못할 때가 훨씬 많았다.


나는 안 괜찮아도 괜찮아야 했고, 괜찮은 척해야 했다.


그러면 아버지는 모를 거라 생각했나 보다.




작년 내 생일을 아버지가 까먹으셨다. 분명 알면 전화를 하셨을 건데, 영 조용한 것이 분명 까먹으신 거 같았다.


그냥 넘어가도 괜찮았는데, 어째 나중에 알면 더 속상하실 거 같아 먼저 전화를 걸었다.


전화를 받고 나서야 깨달은 아버지가 놀래서

“주말에도 생각했었는데 그걸 까먹었다”며 미안해하셨다.


“괜찮아 아빠 그런 거 같더라고

근데 오늘 지나고 알면 더 속상해할 거 같아서 말했어. 생일 잘 챙기고 보내고 있으니 걱정하지 말라고 전화했어”


이 얘길 들은 아버지는 다행이라며 웃으며 전화를 끊었고, 잘 마무리된 거라 믿었다.


그런데 몇 시간 후, 친정오빠에게 전화가 와서 아버지가 속상해서 울었노라 말했다.


깜짝 놀라 물으니, 자식이 고작 둘인데 생일도 못 챙겨줘서 미안해서 그렇다고 하셨다고 했다.


그날 밤에도 누워, 정말 왜 우셨을까 생각했다.


아, 내가 말을 잘못했구나.

차라리 내가 아빠 왜 내 생일 까먹었어! 하면서 장난이라도 화를 냈으면 좀 나았을까.


생일을 잊어버린 것도 미안한데 전화를 걸어 아빠가 속상해할까 봐 걸었다는 게 미안하셨던 거였다.





이번에 집 나간 엄마의 국민연금 분할 신청 때문에 이야기할 때도 그런 느낌을 받았다.


엄마가 그 돈을 받게 하고 싶지 않아 절차를 알아보다가, 몇 가지 확인할 것이 있어 전화로 이거 저거 물어봤다.


26년이나 지난 일이었고, 아버지가 당사자인데도 워낙 처리할 것이 너무 많았으니, 물어봐도 기억이 가물가물한 것들이 많으셨다.


그래서 내가 기억하는 데로 설명하며 확인했고,


듣고있던 아버지가 맞장구를 치시며 대답하시다 이내 목소리가 좀 가라앉았다.


그게 좀 마음에 걸려 며칠 생각했는데, 이후 몇 차례 통화하면서 깨닫게 됐다.


어린 딸이 겪기엔 너무 큰 일이라 멋모르고 있는 줄 알았는데, 그 모든 걸 알고도 묵묵히 있었던 11살의 내가 떠올랐던 거다.


더 이상 그 기억을 생각나게 하고 싶지 않으시다며, 이만하면 됐다고


그냥 그 돈..주고 말자고 하시며 본인은 괜찮다고 하셨다.


내가 아버지를 닮았던 거다.


괜찮지 않으면서 괜찮다고 하는 것이.
괜찮다고 말하면서 괜찮은 척하는 것이.


나는 엄마보다 아버지를 훨씬 많이 닮았다.

참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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