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어두움에 이름을 짓지 않았어요.
옛말에 그런 말이 있다. 슬픔은 나누면 반이 되고, 기쁨은 나누면 배가 된다는 말.
그 말은 누가 이야기 한 줄은 모르겠지만, 어릴 땐 그 말이 좌우명이라도 되는 듯 굴었다.
물론 나눌 행복이 없어 슬픔만 반으로 나누고 다녔다는 것이 문제라면 문제였다.
입을 서서히 닫게 되는 계기가 두 번 있었는데,
한 번은 고등학교시절, 믿는 친구에게 집안 사정을 털어놨다.
그 친구도 부모님이 이혼해서 엄마, 오빠랑 살고 있었기에 우린 제법 잘 통하는 친구라 생각했다. 집에도 놀러 가고 같이 까르르 거리며 추억을 나눴다.
그 당시, 학기 초에 소위 말해 내 꼬락서니가 맘에 안 들어서 싫어하던 무리가 있었는데,
그 무리는 처음 입학했을 때 친해졌던 무리였다. 나와 그 아이들 사이에 집안 수준차이가 꽤 났다.
그중 제일 잘 사는 아이는 오히려 아무 생각이 없었다. 다만 나보다 조금 나은 수준의 아이가 날 거품을 물고 싫어했다.
지금이라면 결이 안 맞나 보다 했을 테지만, 은근한 따돌림에 자발적으로 떨어져 나왔고, 그 덕에 새 친구를 사귀게 되었으니 차라리 잘됐다 생각했다.
그런데 그 믿었던 친구가 그 무리에게 우리 집 이야기를 떠벌리며, 나를 욕하고 다닌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심지어 같은 이혼 가정이었음에도 엄마가 없어서 그렇다느니 오빠가 어릴 때 아파서 가정형편이 어떻다느니 이야기를 하면서 나를 씹었다고 했다.
심지어 그 이야길 해준 게 그 무리 아이들이었다.
그 화가 머리끝까지 나서, 운동장 한복판에서 그 친구에게 따져 물었다.
그 애는 당황하더니 아무 말 못 했고, 나는 큰 실망감에
“다른 건 다 그렇다 치자. 날 싫어하는 거 다 그럴 수 있어 근데, 니가 내가 엄마가 없어서로 욕하는 건 진짜 아니지 않냐?
나는 널 정말 믿었고, 니 비밀 다 지켜줬는데 돌아온 게 이거라니 너무 어이가 없다. 앞으로 아는 척하지 마. “
그 아이는 운동장 한복판에서 울었고, 난 전교생 앞에서 애하나 몰아붙인 기 센 여자애가 되었다.
두 번째는,
그 일이 있은 후 자발적 아싸가 되었고 많이 겉돌다.
쓸데없는 거 기억하기론 주변에서 인정해 줄 정도로 기억력이 좋은 편인데, 고등학교 시절은 드문드문 끊겨서 기억이 나는 구간이 많이 있다.
그러다 다행히 지금 까지 만나는 친구들을 사귀게 되고, 내 잘못된 점을 이야기해 주기도 하고 나도 바뀌려고 노력하면서 조금 나아졌다고 생각했다.
그 시절 내 별명은 인간극장이었고, 혹은 꽃보다 남자의 금잔디, 들장미소녀 캔디였다.
악착같이 잘해보려고 해도 집안의 사건은 계속 터지고, 집은 갑갑하고 되는 게 없어 막막하던 때.
그나마 마음 나누던 친구들에게 이야기를 나누는 게 유일하게 마음이 가벼워지는 기분이었다.
그러다, 한 친구가 그랬다.
“네가 힘든 것도 알겠고 일이 터지는 것도 알겠는데, 널 만나면 너무 힘들어. 널 생각만 해도 우울해져”
그 이야기를 듣고 돌아오던 날.
조금은 어른이 됐던 거 같다.
그동안 내가 정도를 몰랐구나.
기댈 곳이 필요해 친구들에게 너무 많은 짐을 지어줬다는 것이 부끄럽고 한편으론 슬펐다.
행복도 나눌 수 있었다면 좋았을걸.
그때부터, 의식적으로 내 이야기를 할 때 울지 않는다.
최대한 담담하고 아무렇지 않게 말하기 시작했다.
이야기는 하지만 별일 아니라는 듯이.
그리고 상대에게 여운을 주지 않고 말을 돌린다.
대답은 했으나, 너무 과한 짐을 짊어지게 하기 싫어 터득한 방법이었다.
그렇다 보니, 내 안에 슬픔은 쌓여만 갔다.
나눌 수도 바꿀 수도 없이 그렇게 가득 차서 슬픔에게 괜찮다는 빨간딱지를 압류하듯 덕지덕지 발라봐도
그 슬픔은 압류되지 않고 그대로 쌓여갔다.
그때부터 조금씩 글을 썼다.
그리고 이내 찢어버리고 버려버렸다.
결국은 내 짐이니까, 그러다 페이스북을 하게 되고 이따금씩 누군가에게 말하고 싶을 때 숨통이 트일 만큼만 썼다.
그 방법은 꽤나 오래 유지했는데, 결혼 후 감당할 수 없는 일이 터져버리니 그마저도 할 수 없었다.
그러나 나에게 있던 큰 불행은 알음알음 전해졌고, 꽤 많은 지인들이 알게 되었다.
아, 또 이렇게 약점이 되고 나라는 사람이 슬픔 이가 되어가겠구나 생각할 때쯤.
같은 슬픔이 있는 사람.
혹은 비슷한 힘듦이 있는 사람들에게서 연락이 왔다.
나라면, 그 이야기를 들어주고 이해해 줄 사람이라 생각했다고 했다.
그 경험은 참 묘하고 신기한 일이었다.
이 일은 오래도록 마음에 남아 이곳에 오게 됐다.
그리고 그 일은 지금도 일어나고 있다. 내가 써둔 이야기에 같은 아픔을 내려놓는 사람들이 생긴 것이다.
그리고 신기하게도 내 슬픔도 아픔도 같이 어루만져지기 시작했다.
그렇게 다시 꺼내 두기 힘든 이야기를 다시 정리해 둬야겠다는 결심을 했다.
그러자 제목은 바로 떠올랐다.
“별이 되어 선물해 준 엄마라는 이름” 고단했던 내 임신 출산 육아에 대한 이야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