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의 괴승 라스푸틴을 통해 본 한국의 무당 정치 출현 가능성
러시아의 괴승 라스푸틴
제정 러시아의 괴승 라스푸틴
‘그는 엄청난 성욕의 소유자로 유명해서 남녀를 가리지 않았으며, 자신의 추종자들과도 성교를 자주 하였다. 추종자에 따르면 그의 페니스는 평상시에는 30cm, 발기 때는 40cm가 넘었다고 한다. 그의 주변에는 항상 여자들로 붐볐으며, 왕후가 그에게 보낸 편지들을 보면 둘 사이에 모종의 로맨스가 있다는 사실을 짐작해 볼 수 있다고 한다. 그가 물속에 버려져 죽기 직전에 한 여인이 그의 음경을 잘라서 보관해 오다가 현재는 한 성인물 박물관에 보존되어 있다고 한다.’
백과사전에 기술되어 있는, 어떤 역사적인 인물에 대해 설명한 부분을 일부 요약해 본 것이다. 대개 권력이나 왕조의 패망 뒤에는 으레 드라마틱한 전설이 있게 마련이다. 중국에서는 한말의 환관들이 그랬었고 신라시대 진성여왕의 주변이 그러했고, 고려 왕조 말의 신돈, 구한말 명성황후 옆에 진령군이라는 무당이 그랬다.
역사는 소위 그 ‘악마’들에게 왕조 몰락이라는 감당하기 어려운 거대한 책임을 전적으로 떠 넘긴다. 그럼으로써 모든 파국의 끝에 필연적으로 수반되는 유혈 참극의 짐을 훌렁 벗어던져버리고 오랜 기간을 추종하며 기생했던 권력에 대한 배은망덕의 죄의식도 전가해버린다.
러시아 마지막 제정 로마노프 왕조에게는 왕조를 망하게 한 바로 그 ‘악마’가 그리고리 예피모비치 라스푸틴(Grigori Rasputin)이라고 할 수 있겠다. 한 나라의 황실과 많은 귀족 여성들을 농락했던 대물의 소유자인 그는, 300여 년 제정 러시아 말기 로마노프 왕조의 막바지에 등장하여 제정 러시아의 운명을 재촉한 것으로 알려진 악명 높은 요승(妖僧)이요 ‘악마의 수도사’이다.
그는 신비적인 편신교(鞭身敎)의 일파에 가입해 각지를 떠돌며 환자를 고치고 미래 예언하는 능력을 보였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래서 많은 농민들에게 영적 지도자라는 명성을 얻게 된다. 1903년 상트페테르부르크에 간 그는 비범한 치료 능력으로 인해 당시 궁정 사교계에 유행하는 신비주의 분위기에 영합되어 크게 환영을 받았다.
그러던 중 1908년 러시아 로마노프가의 황태자 알렉세이가 혈우병 출혈로 위급한 상황에 처했을 때 최면술 등으로 치료해줌으로써 대가 아주 셌던 황후 알렉산드라와 대가 약한 황제 니콜라이 2세의 마음을 동시에 사로잡게 된다. 특히 황후에게 신처럼 떠받들어졌다. 극심한 신경쇠약에 시달리던 알렉산드라 황후는 라스푸틴 없이는 하루도 견디지 못하는 지경에까지 이르게 되었고 라스푸틴은 이를 빌미로 황제 니콜라이 2세를 사실상 허수아비로 만들며 폭정을 일삼았다.
제정 말기에 노동자와 농민에 대한 수탈과 압제가 가혹했고 특히 유대인 등 소수민족 박해와 언론 및 사상 통제가 극심했는데, 이 정책의 지휘자는 무능했던 허수아비 황제가 아니라 사실상 라스푸틴이었다고 알려진다. 또 급료 인상을 요구하는 20만 명의 노동자를 총칼로 유혈 진압하여 짓밟아 러시아 볼셰비키 혁명(1917년 10월 혁명)의 도화선이 된 1905년 1월 ‘피의 일요일’의 배후도 라스푸틴이라는 설이 있다.
한편, 그는 황제 앞에서의 보인 겸손하고 신성한 농부의 모습과 달리 궁정 밖에서는 끝없는 방탕한 행각에 탐닉했다. 자신과 육체적으로 접촉하면 정화와 치료의 효과를 볼 수 있다고 설교하며 정부들과 많은 여자들을 유혹했다. 그러나 그의 이런 추문들이 니콜라이의 귀에 들어갔을 때 황제는 사실을 믿으려 하지 않고 오히려 그를 비난한 사람들을 러시아의 오지로 좌천시키거나 자리에서 완전히 쫓아냈다.
1911년에는 총리 P.A. 스톨리핀이 황제에게 라스푸틴의 추문과 비행에 관한 보고서를 올려 일시적으로 그를 추방했으나, 황후 알렉산드라는 몇 달 후에 그를 다시 불러들였다. 화내는 신경쇠약의 아내와 혈우병 아들이 걱정된 황제는 이제 라스푸틴을 비난하는 말들에 귀를 닫아 버리고 무시하기로 한 것이다.
황후의 비호를 받은 라스푸틴의 권력은 1915년 이후 절정에 이른다. 특히 그는 1915년 정치적으로 무능했던 황제 니콜라이 2세를 부추겨 황제가 제1차 세계대전에 직접 참전하게 했고, 직접 군대 지휘를 맡아 전방 부대로 떠나는 황제가 황후에게 러시아의 내정을 맡기자 라스푸틴은 그녀의 개인 고문역을 맡았다.
이제 러시아는 완전히 라스푸틴의 천하가 된 것이다. 라스푸틴의 폭정은 그 유래를 찾을 수 없을 만큼 엄청난 수준이었다. 황후는 라스푸틴의 말이라면 무조건 신봉했고 황후의 비호 아래 러시아의 내정과 외교를 자기 마음대로 전횡했다. 교회 성직자의 임명에서부터 각료 선출, 군사문제에 이르기까지 절대적인 영향력을 행사했으며 전제정치나 자신에게 반대하는 자에 대해서는 무자비한 숙청을 자행했다.
라스푸틴은 절대적인 권력과 엄청난 성 능력을 바탕으로 귀족 여성들과 관계로 염문을 뿌리고 다녔다. 종국에는 황후 알렉산드라도 그의 정부라는 소문까지 났다. 거리에는 황후와 라스푸틴의 내연관계를 조롱하는 벽보가 나붙었다. 온 나라에 혁명의 기운이 무섭게 일어나게 되자 이에 두려움을 느낀 일부 황실과 귀족들은 라스푸틴에 의해 실각했던 니콜라이 대공을 옹립하려고 했고 라스푸틴을 암살해 제거하는 계획을 수립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결국 라스푸틴은 1916년 12월에 황제의 조카사위 등에 의해 처참하게 암살당하게 되고, 물에 버려져 익사한 그의 음경은 여성 추종자에 의해 몰래 잘려 보관되어 오다가 현재 상트페테르부르크의 성인물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다고 한다.
그러나 그의 죽음이 끝이 아니었다. 이 암살 사건은 황후 알렉산드라에게 전제정치 원칙을 고수하겠다는 결심을 더욱 굳건하게 했지만 라스푸틴이 숨진 지 석 달 뒤 2월 혁명이 발발했고, 제정 러시아는 혁명에 전복된다. 10월 혁명으로 레닌 볼셰비키 사회주의공화국이 수립된 것이다. 그로부터 1년 남짓 후 황제와 황후, 그들의 자녀는 1918년 7월 볼셰비키 손에 총살 처형되었고 로마노프 왕가는 몰락하게 된다.
역사를 보면 대개의 경우 나라가 무너질 때에는 여러 가지 징후나 조짐이 나타나는 법이다. 1차 대전 동안 러시아에도 숱한 망하는 징조들이 나타나고 있었다. 경제파탄과 민심이반이 진행 중임에도 불구하고, 자본가와 그들과 결탁된 정치인들은 국가의 혼란을 틈타 엄청난 이득을 챙기는 ‘조국 방위의 성전’으로 국민을 내몰고 있었다.
황제는 대가 약하고 유약했고 그의 뒤에는 드세고 신경쇠약에 시달리던 편협한 황후 알렉산드라가 있었다. 그리고 그녀의 뒤에는 그녀가 절대 신처럼 떠받드는 괴승 라스푸틴이 있었다. 황제와 황후는 모든 우군세력마저도 저버린 채 갈수록 라스푸틴에게 의존했고 그는 국정을 마음대로 농단하고 인사를 좌우하여 기회주의자들을 등용하였고 결국 300년 제국의 패망이라는 파국의 길로 들어선 것이다.
2022년 지금, 2016년 최순실에 의한 국정농단 사건이 불과 몇 년 전에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죽은 지 100년이 되는 제정 러시아의 요승 라스푸틴을 연상시키는 이야기들이 최근 대선판 여기저기에서 심심치 않게 떠돈다. 그렇지 않기를 진심으로 소망해보지만 한편 걱정되는 일은, 소위 ‘비선(秘線)’ 인물들에 관한 소문들과 더불어 경제계뿐만 아니라 정치권의 최고 관심 사안에도 역술인 혹은 무속인이 등장한다는 것이다.
‘비선 실세’, ‘무속인’ ‘무당’ ‘굿’ 같은 말이나 주변 정황에서 왠지 ‘라스푸틴의 냄새’가 풍겨 나와 나라를 사랑하는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불안하다. 만에 하나라도 그렇다면 ‘현대판 라스푸틴’으로 불릴 만하지 않을까? 요설이 난무한다는 것은 그 자체가 곧 뭔가 국가가 건강하지 못하다는 증거일 것이다. 정상적으로 정치 권한을 수행하고 행사해야 할 자리에 가당치도 않은 인물이 개입한다면 그때엔 제정 러시아 왕조의 운명처럼 바람 앞의 등불일 뿐이라 여겨진다.
마지막으로 E.H 카의 말을 적어본다. 그는 <역사란 무엇인가>란 책에서 역사란 ‘과거와 현재와의 대화’ 또는 ‘과거 사실과 현재의 역사가의 대화’라고 말했다. “과거에 비추어 현재를 배운다는 것은 또한 현재에 비추어 과거를 배우는 것이기도 하다. 역사의 기능은 과거와 현재의 상호관계를 통해 양자를 더 깊이 이해시키려는 데 있는 것이다. 위대한 역사란 분명히 과거에 대한 역사가의 전망이 현재의 문제에 대한 통찰에 의해 조명되는 바로 그때 써진다.” - E.H. 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