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센 자가 무조건 이기는 약육강식의 싸움 기술(術)을 넘어 정신수련을 위한 ‘도(道)’로 승화시킨 우리의 무도, 태권도는 전 세계적으로 2억 명에 이르는 수련자들을 보유하고 있어서 오래전부터 이미 국제적인 무술이 되었다. 나는 초등학교부터 고등학교까지 태권도부에서 운동을 하였고 그리고 해병대에 복무하면서 유단자로서 대원들을 지도하기도 했으니 나의 젊은 시절은 태권도와 인연이 깊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태권도에는 5대 정신이란 것이 있다. ‘예의, 인내, 극기, 백절불굴’ 그리고 염치가 그것이다. 요즘은 잘 모르겠지만, 과거 도장에서는 수련자들이 매일 운동 시작과 종료 시에 큰 소리로 복창했다. 초등학교 때 나는 그중에서 ‘염치’가 매우 인상 깊었다. 다른 4가지 덕목은 운동이라는 영역에서 신체적으로 극한 상황이 요구되는 경우가 있어서 대단히 중요한 요소라고 여기고 있었지만 염치라는 단어는 강함을 겨루는 무술에는 너무 생뚱맞다고 생각하고 피식 웃었던 기억이 있다.
염치(廉恥)의 사전적 의미는 체면을 차릴 줄 알며 부끄러움을 아는 마음이다. 논어 헌문 편에는 ‘염치’에 관한 이야기가 있다. 제자 헌이 공자에게 부끄러움에 관해 묻자 공자는 “나라에 도가 없는데 국록을 받아먹는 것이 부끄러운 일이며, 나라에 도가 없는데 부하고 귀하게 사는 게 부끄러운 일(邦無道穀恥也, 邦無道富且貴焉恥也 )”이라고 답했다.
이처럼 공자는 부끄러움의 주관적인 작용을 사회적 언어로 변환시켜 부끄러움을 정치가의 기본 덕목으로 제시했고, 맹자는 부끄러움을 아는 데서 의가 시작된다고 했다. 순자는 예의를 중시하지 않고 먹고 마시는 것만 중히 여기는 사람들을 비판하면서 처음으로 염치란 말을 정치사상의 개념어로 만들었다. 이를 더욱 구체화하여 국가를 유지하는 4가지 덕목(四維)으로 예, 의, 염, 치를 정리하여 이를 국가적인 정치윤리로 견인한 것은 관자다.
홍상수 감독의 영화들에는 일상과 인간 실존의 남루함과 추레함을 잘 드러내는 명대사들로 넘쳐난다. 그중 유명한 것은 영화 <생활의 발견, 2002>에 나온다. "사람 되는 거 참 힘들어. 하지만 괴물은 되지 말고 살자"라는 대사가 그것이다. 그가 말하는 사람과 괴물의 기준은 부끄러움을 아는 능력 즉, '염치'의 유무일 것이라고 생각해본다.
과거 우리의 고난의 역사를 살펴보면, 굶주렸던 민초들에게 지상의 절대명령이며 삶의 유일한 목표는 죽지 않고 살아남는 것이었다고 여겨질 정도로 눈물겹다. 그런 사회적 풍토 속에서 사람들은 대개 필연적으로 보수주의자가 되게 마련이다. 하루하루 생존 자체를 걱정해야 하는 각박한 삶 속에서 마음 편하게 온전한 사람으로서 주어진 생명을 잘 누릴 수 있는 삶은 불가능했다.
소위 ‘염치가 살아있는 좋은 사회’를 어떻게 만들 것인가에 대한 논의와 시도들은 철없고 위험한 것으로 매도되었다. 일제 식민통치, 강대국에 의한 남북 분단, 6.25 전쟁, 4.19 혁명, 군사 독재, 월남 파병, 518 광주 민주화운동, IMF 외환위기, 남북 긴장 대치 상황 등의 급변하는 역사적 소용돌이 속에서 모든 것을 초월한 가장 중요한 가치는 바로 생존 그 자체였다. 거기에 ‘염치’는 낄 자리가 없었다.
영화 <국제시장>은 6.25 전쟁 때 흥남 철수 작전으로 월남한 주인공 ‘덕수’의 삶을 그려내고 있다. 6.25 전쟁세대가 타향에서 죽은 아버지를 대신해서 그 가족을 지켜 내기 위해 겪어내야만 했던 신산 고초의 생활을 극명하게 잘 보여준다. 영화의 마지막에서 아버지의 사진을 보며 “이만하면 저 괜찮게 살았지예?”라는 덕수의 독백은 그 엄혹하고 냉정한 시대를 온몸으로 견뎌냈던 전쟁세대들의 긍지와 눈물을 상징한다.
그리고 그것은 배고픔과 죽음의 공포를 철저히 신체적으로 사상적으로 내면화한 보수적인 전쟁세대의 삶을 이해할 수 있는 키워드가 된다. 그러나 이제는 고단한 삶에 지쳐 한 편으로 밀쳐 뒀던 ‘염치’에 대해 되짚어보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여겨진다.
‘천지지간 만물지중 인간이 가장 귀한 이유가 뭔지 아느냐? 염치를 알기 때문이다. 염치는 제 것과 남의 것을 분별하는 데서 생긴다. 염치, 이 두 글자를 평생의 문자로 숭상하여라. 그러면 너는 어디를 가든 사람답게 살 수 있다.’ (성석제 소설 <투명인간> 중)
소설 <투명인간>에 나오는 ‘염치’라는 키워드를 우리는 어떻게 읽어야 할까? 영화 <국제시장>의 주인공 덕수와는 또 다른 세대인 투명인간 세대. 생산성 증대와 수출 그리고 건설의 시대에 반공방첩의 사회적 분위기 속에서 살아온 60대 베이비 붐 세대인 ‘김만수’. 그는 이전 세대인 할아버지가 남겨놓은 가훈 ‘염치’를 지키며 사느라 결국 이 몰염치의 사회에서 존재가치가 부정되는 투명인간으로 전락한다. 즉, 염치가 만수를 시대 부적응자로 만들어 파멸로 이끄는 근원이 된다.
이것은 생존만을 지상명령으로 살아온 이전 한국 세대들이 이 땅에 구축해 놓은 업보를 다음 세대가 고스란히 떠안아 받은 것이 아닐까? 이렇듯 염치는 약자에게만 요구되고, 강한 자는 염치를 지키지 않는 것이 우리 현실의 비극이다.
한탄스러운 것은, 2022년 목하 대통령 선거로 인해 드러나고 상징되는 시대정신이 이렇게도 파렴치한데 그 휘하의 엘리트 관료들이나 힘 있는 자들이 염치가 있을 리 만무하다. 대개 파렴치와 몰염치는 코로나 바이러스처럼 빠른 속도로 전염되기 마련이어서 이제는 한국 정치 사회 문화 언론 곳곳은 파렴치와 몰염치가 더 이상 부끄러움이 아니고 자랑처럼 여겨질 정도다. 잘못을 진심으로 뉘우치고 사죄하는 사람은 눈을 씻고도 찾기 힘들다. 내로남불, 모두 남 탓을 하거나 억울해한다. 가해자들이 오히려 피해자 코스프레를 하고 있다. 염치가 없어서 벌어지는 해괴한 일들이 현재 시전 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영화 <부산행>에서 희망을 봤다. 공포 상황에서, 살려고 염치를 버린 군중과 그래도 염치를 지키려는 사람들 사이의 피비린내 나는 싸움을 보여주는 이 영화는 “너는 과연 어느 쪽인가"라는 화두를 던진다.
영화 속 임산부와 어린아이는 사회적 약자지만 희망의 불씨다. 그런데 극한 공포의 좀비 지옥에서 두 약자들이 보여주는 ‘염치'는 놀랍다. 약자가 약자에게 공감하듯, 남편에게 어린아이를 살리라고 악다구니를 쓰는 임산부, 노숙자를 살리기 위해 아빠에게 애원하는 어린아이. 남편과 아빠로 하여금 이 난국을 타개하는 선봉장으로 각성하게 만든 것은 바로 비록 약자지만 염치를 가진 소시민이었던 그녀들의 일관된 공동체적 의식 때문이었다.
우리는 어쩔 수 없이 누구나 차츰 보수주의자가 된다. 특히 생존 자체가 지상의 절대명령이 된 열악한 사회에서는 그 유혹에서 벗어날 수 없다. 우리는 과거 오랜 기간 동안 그런 사회에서 살아왔고 현재도 살아가도 있다. 그러나 부디 염치를 아는 사람이 되자. 이제 생존 자체를 걱정해야 하는 사회를 넘어 모두가 염치를 아는 온전한 한 사람으로서 주어진 생명을 잘 누릴 수 있는 좋은 사회를 어떻게 만들 것인가에 대한 논의로 확장되지 않으면 우리의 삶과 사회는 건강해질 수 없다. 이런 상태가 계속된다면 “잘 먹고 잘 살았더라”라는 식의 현대판 통속적인 신파극만이 계속 이어지는 우리의 삶이 될 것이라 생각한다.
이로움이 의로움을 압도하는 사회는 배금주의적 천민자본주의 사회다. 그동안 우리 사회가 배금주의적 천민 자본화가 진행된 까닭으로 그동안 보다 좋은 세상으로 이끌려는 이상적 의미의 정치적 노력들이 많이 부족했다. 먹고사는 데 급급해 좋은 정치보다 경제성장이 우선시되면서 염치는 헌신짝처럼 구석에 버려져 갔다. 염치의 부재는 우리 사회를 사사로운 이익을 추구하는 세력들의 각축장으로 만들었다. 혹자들은 이것을 오히려 국가 경영으로 착각하고 있는 것은 매우 불행한 일이다. 그 사람들이 밀실에 모여 상호 결탁하여 현재 한국의 난맥상을 만들어 내고 있다.
맹자는 진심 편에서 '사람이란 부끄러워하는 마음이 없어서는 안 된다'(人不可以無恥)고 우리에게 말한다. 염치의 회복만이 우리 공동체를 위한 참된 길이다. 나는 부디 2022년 20대 대통령선거에서 그 희망의 싹을 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