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나다 하늘은 맑고 청명하다 못해 눈이 시리게 푸르렀다

갑상선암 입원수술치료기록

by 황규호

만물은 신이 목적을 가지고 배치한 것이다. - 소크라테스




나는 암 환자다.


2019년도 가을이었다. 단풍의 나라 캐나다의 하늘은 맑고 청명하다 못해 눈이 시리게 푸르렀다. 나는 화장실에서 면도를 하고 있었다. 화장실 거울 속에서 비친 나의 모습에서 평소와 다른 뭔가 감지되었다. 목울대 우측 하단에서 쇄골에 이르는 목 라인의 중간 부분이 약간 불룩하게 올라온 모습이 보였다. 손을 조심스럽게 가져다 얹었다. 몽글몽글 결절이 만져졌다.


요사이 분주한 일상에 몸을 바쁘게 움직인 관계로 피곤하여 임파선이 부어서 그럴 수도 있겠다 싶었으나 직감적으로 이상하다는 느낌이었다. 불안한 생각이 등줄기를 타고 찌릿하고 올라왔다. 안경을 쓰고 찬찬히 목 주위를 다시 자세히 살폈다. 무섭고 걱정스러운 마음에 손이 떨려왔다. 숨을 가라 앉히고 패밀리 닥터 사무실에 전화했다. 상담 날짜를 잡았다.




캐나다는 환자가 아무리 급하다고 온갖 수선을 떨어도 바로 종합병원이나 큰 병원으로 갈 수가 없다. 한국에서는 필요하면 환자나 가족이 재력이나 권력 등 온갖 수단을 활용하여 바로 좋은 병원에서 진료를 받을 수 있지만 캐나다는 전혀 사정이 다르다. 캐나다인들은 참으로 강심장을 가진 대단한 사람들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어떤 때는 삶을 초월해 득도한 사람들처럼 여겨지는 순간이 있다. 캐나다 사람들은 원래 생활습관이 그런지 몰라도 참으로 느리다. 좋게 말하면 여유롭다.


그러나 좁은 나라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살며 어느 분야에서나 치열한 경쟁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몸부림치는 한국, 고객에게 보다 신속 정확 친절한 서비스가 생활화된 우리 한국인들의 입장에서는 나무늘보나 판다 곰처럼 느릿느릿한 일처리에 한국에서 이민 온 사람들은 복장이 터지는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필자는 캐나다에 살면서 천만 다행히 심장 박동수가 급격히 상승하도록 애가 타 들어가는 위급했던 경험은 아직 없었지만, 캐나다에서는 일반적으로 환자가 피를 철철 흘리면서 병원에 숨 넘어가게 달려와도 여기 의사나 간호사들이 눈 하나 꼼작 하지 않는다고 한다.




캐나다에서는 모든 환자들은 일단 1차적으로 가정의(패밀리 닥터)에게 진찰을 받은 후에 소견서를 받아 2차 스페셜 닥터가 있는 전문 병원으로 예약을 해야 한다. 그리고 또 상당한 기일이 지난 후에야 진료를 받으러 갈 수 있다. 그 후에 비록 스페셜 닥터를 거쳐도 상태가 위중하여 다시 수술이 집도 되는 큰 병원이나 종합병원에 갈 수 있기까지는 몇 달이 걸리는 것이 바로 캐나다의 의료 시스템이다. 이 모든 과정이 짧게는 3개월 길게는 1년 이상 걸리기도 한다.


약값을 제외한 모든 의료비가 무료이지만 만성적으로 병상이 부족한 상태이기 때문에 치료를 기다리는 대기자가 항상 줄을 서 있다. 다이내믹 코리아, 성격이 급한 한국인의 정서와 입장에서는 미치고 환장할 지경인 상황이 줄곧 연출된다. 캐나다에서는 기다리다 죽는다는 말이 이래서 나온다. 그래서 경제적으로 여유가 되는 한국인들은 비용이 들더라도 고국으로 돌아가서 치료를 받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예약 후 며칠 뒤 블루어 한인 타운(코리아 타운)에 있는 패밀리 닥터를 방문하니 초음파 검사를 해보자고 했다. 다시 며칠 후 예약한 초음파 병원을 방문하여 촬영을 하고 그 결과가 한 참 후에 나왔다. 초음파 진단 결과에 따른 의사의 소견에는 크기 4Cm 크기의 갑상선 결절이 보인다고 했다. 상대적으로 여자에게는 흔하지만 남자에게는 다소 생소한 갑상선암 일지 모르겠다고 했다. 그러나 비록 암이 아닐지라도 일단 크기가 1cm 이상이면 갑상선 절제 수술을 권한다고 했다. 엄습하는 불안감에 가슴이 날뛰었다.


다시 종합병원에 진료 예약을 하고 몇 주를 기다렸다. 종합병원 스페셜 닥터가 진찰 후 바로 갑상선 절제 수술을 결정하고 또다시 수술을 전문으로 하는 종합병원에 수술을 의뢰했다. 그렇게 수술 날짜를 기다리고 있는데 설상가상으로 2020년 3월 코로나 바이러스가 온 세상을 휩쓸었다. 걱정과 염려 속에 하루하루가 참으로 더디게 지나갔다. 눈을 감으면 암세포가 전이되는 모습이 동영상 화면처럼 상상되고 플레이되는 것 같아서 애가 참 많이도 탔다. 지켜보는 가족들은 내색도 못하고 발만 동동거렸다. 그렇게 시간은 야속하게 흘러갔다.




2020년 10월 초, 8개월 넘게 긴 수술 대기 상태에 있다가 드디어 수술하는 날짜를 통보받았다. 그리고 10월 말에 토론토에 있는 마운트 씨나이(Mount Sinai) 종합병원에서 갑상선 전부를 잘라내는 갑상선암 제거(전절제) 수술을 받았다. 그나마 늦게 라도 수술을 받게 되어 얼마나 감사하던지. 갑상선은 좌우 2개가 있다. 필자는 혹이 너무 커서 두 개 다 제거하는 전절제 수술을 받았다. 향후에는 지속적인 암세포 추적 관리가 필요하며 갑상선의 기능이 모두 제거되었으므로 평생 약을 복용하며 살아야 한다.


코로나 바이러스 여파로 입원 수속도 혼자 가서 진행해야 하는 것이 원칙이었고, 수술 후에도 가족이나 보호자 없이 병실에서 홀로 밤을 지내야 했다. 더군다나 수술 후 그다음 날 정오에 바로 퇴원을 시켰다. 캐나다는 모든 의료 비용이 무료이기 때문에 항상 병상이 부족한 상태여서 위중한 환자를 제외하고 가급적이면 최단시간에 퇴원을 시킨다.


코로로나 인하여 의료 및 모든 상황은 최악이었다. 한국에서는 갑상선암 수술을 할 경우 대개 4일에서 일주일 정도 병원에 입원하여 사후 관리를 받는다고 하고 여러 가지 후속 조치가 이어진다고 하는데 여기서는 꿈도 꾸지 못한다. 한국의 의료시스템이 마냥 부러웠다. 수술 부위가 아직도 얼얼하고 아프다.




밖에는 비가 추적추적 내린다. 오랜만에 내리는 가을비다. 도로를 달리는 자동차 바퀴에 짓눌려 바닥에 고인 빗물들이 토해내는 소리가 마치 신음처럼 들려 마음을 심란하게 한다. 비에 젖은 낙엽들은 차량의 바퀴에 밀려 아스팔트 도로 위를 이리저리 나뒹군다. 우리네 인생도 비에 젖어 이리저리 나뒹구는 도로 위의 낙엽 같은 저런 모습이 아닐까?


나는 왜 이 작은 창백한 초록별 지구에 태어났으며, 왜 이 머나먼 이국 땅, 한국에서 비행기로 13시간이나 걸리는 지구 반대편 캐나다까지 흘러 들어와 이렇게 살아가야 하는가? 다른 사람들은 멀쩡한데 나만 지지리도 재수 없게 암에 걸려 신음하며 미래를 걱정하고 있는가?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해 어려워진 경제 상황에서 4인 가족의 가장이라는 무게감은 나의 어깨를 짓누른다. 수술부위가 더욱 아파온다. 마음의 아픔이 더하다.




그러나 아마도 내가 사주명리학을 배우지 않았더라면 일부의 일반인들처럼, 타국에서 홀로 깊은 실의에 빠져 정상적인 생활을 하는데 많은 어려움을 겪었을 가능성이 컸을 것이다. 사주명리학의 입장에서 보면, 2019년 기해년은 필자의 사주에서 지지(地支)에 충형(沖刑)과 원진살(怨嗔煞)이 발생하는 해다. 게다가 나를 의미하는 일주(日柱)가 세운(歲運)과 겹치는 복음(伏吟)이 일어나는 해라는 것을 이미 인지하고 혹시 모를 변고를 마음속으로 대비하고 있었다.


여기서 복음이란 사주 명식과 운을 포함하여 간지(干支)가 같은 글자가 두 개 이상 겹치는 현상을 말한다. 복음이라는 사주명리학 용어의 의미 자체가 엎드려 신음한다는 뜻이다 보니 복음은 해당하는 운에서 흉(凶) 작용을 크게 일으키는 것으로 정평이 나 있다. 납작 엎드려 꺼이꺼이 우는 형상이니 그 아픔은 어떻겠는가?


2020년 경자년 역시 필자의 사주에서 천간(天干)과 지지(地支)에 충이 동시에 발생하는 천충 지충(天沖地沖)의 해였으며, 더군다나 수술을 받은 10월은 형살(刑煞)이 들어오는 달이어서 내심으로 아마 그때쯤 수술을 위한 입원 연락이 오리라 미리 짐작하고 있었다. 신기하게도 맞아떨어지니 사주명리학의 그 실용성이 자못 크다.



이렇듯 앞으로 일어날 가능성이 있는 사고나 변고를 미리 인지하게 되면 마음속으로 대비하게 되니 비록 흉한 일이 발생하더라도 미래에 다가올 그 아픔에 대해 미리 마음의 내성을 다질 수 있고, 더 나아가 원래 상태로의 빠른 회복을 위해 적극적인 자구 노력을 경주하는 요인이 되기도 한다. 사주명리학의 심리적 그리고 현실적 실용성이 여기에 있다고 본다. 사주명리학은 나에게 위안을 주는 학문이다. 우리 인생에도 사주라는 내비게이션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