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철역에는 노란 길이 있다. 시각장애인을 위해 깔아 둔 올록볼록한 길이다. 일부러 자주 걸어본다. 가끔 눈을 감아보기도 한다. 뗄 수 있는 걸음은 기껏해야 세 발자국 정도. 부딪힐 건 없다는 걸 알면서도 질끈 감은 눈을 열 수밖에 없다.
8살, 포도막염이란 눈병에 걸렸다. 실내 수영장에 다녀온 어느 날, 눈이 빨개진 나를 엄마는 안과에 데려갔다.
더 큰 병원을 가보셔야겠는데요.
며칠 후, 담임 선생님께 자초지종을 설명드리고 오전 일찍 집을 나섰다. 대학 병원의 의사 선생님은 오전 진료만 보셨기 때문이다. 지하철역까지 걸어가는데 엉엉 울며 엄마 손을 잡고 매달렸다.
엄마는 괜찮아 괜찮아했다.
병원을 가는 내내 울었던 것 같기도 하고, 울진 않고 바들바들 떨기만 했던 것 같기도 하다. 주사를 맞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주사는 없었다. 대신 기약 없이 주 2회를 꼬박꼬박 병원에 다녀야 했다. 병원에 다니는 것은 힘들지 않았다. 오히려 어렸던 내게는 기다려지는 이벤트였다고 할까. 겁낼 주사가 없다는 것과 집에 돌아갈 때가 되면 지하철역에 붙어 있던 백화점의 정문이 활짝 열려 있었기 때문이다. 집에 돌아가는 길 엄마와 함께 먹는 햄버거 세트가 그렇게 좋았다.
안구에 주사를 맞는 수술을 끝으로 원인을 알 수 없던 병은 활동을 멈췄다. 12살이었다. 그러나 언제 깨어날지 모르는 병 때문에 주기적으로 병원은 다녀야 했다. 혼자 병원에 다닐 수 있을 때쯤, 포도막염은 깊은 잠에 빠졌다.
마지막 정기 검진의 날. 백화점 지하에 들러 햄버거 세트를 먹었다. 여전히 맛있었다. 병원에 처음 가던 그날 떨어지던 물방울같이 엄마가 뚝뚝 떨어졌다.
엄마도 얼마나 무서웠을까
엄마는 매일매일 보이지 않는 길을 걸었으리라.
주사를 맞지 않아도 두려웠으리라.
눈을 감고 하루하루를 살았으리라.
진짜 두려운 것이 눈앞에 있을까 싶어.
그때의 엄마에게 다 잘 될 거야 말해주고 싶다.
다 잘 될 거야. 다 잘 될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