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장 아이가 찍어주는 점(나의 기분)

[오늘의 단어] 나의 기분(오늘 나를 잃지 않기 위해 붙잡아 두는 말)

[오늘의 단어] 나의 기분(오늘 나를 잃지 않기 위해 붙잡아 두는 말)


작년에 아이가 ‘기분 사전’을 내게 5,000원에 판매한 적이 있다.

노트를 펼치면 이런 문장이 적혀 있다.


“질투나요. 친구가 달리기에서 트로피를 받아 질투나요.”


맞춤법이 조금 어색한 것도 같고,

어딘가 귀엽게 서툰 문장이지만 읽다 보면 마음이 잠시 멈춰진다.


‘나도 저럴 때가 있었을 텐데.

질투를 저렇게 솔직하게 적을 수 있었던 때가.’


아이의 질투는 단순하다.

“저 트로피가 갖고 싶어요.”

“나도 저렇게 잘하고 싶어요.”


그 마음이 부끄럽기도 하지만,

그보다 먼저 나오는 건 ‘좋아하는 마음’에 가깝다.

멋있어 보여서, 부러워서, 닮고 싶어서 생긴 감정.


하지만, 어른의 질투는 조금 다르다.


누군가 새로운 자리에 발령이 나거나,

칭찬 메일에 늘 같은 이름이 올라오거나,

SNS에서 남의 일상을 스쳐 보다가 괜히 마음이 꺼끌 해지는 날.


처음에는 아이와 똑같이 시작한다.

‘나도 저렇게 되고 싶다.’


그런데 거기에 금세 다른 말이 붙는다.

‘근데 왜 나는 이 모양일까.’

‘저 사람은 좋겠다, 나는 안 그렇네.’


질투라는 감정 하나만 있었던 자리에 열등감, 허무함, 자기 비난이 줄줄이 따라붙는다.

그래서 어른의 질투는 더 빨리 숨겨진다.

“아냐, 나는 괜찮아.”

“나까지 그런 생각하면 좀 속 좁아 보이지.”


그러다가 어느 순간, 질투는 감정이 아니라 ‘성격’처럼 굳어 버린다.

“나는 원래 이런 사람인가 봐.” 하고.


아이의 기분 사전을 들여다보며 제일 부러운 건 솔직함이다.


‘질투나요.’

‘무서워요.’

‘신나요.’

‘심심해요.’


하루 동안 스쳐 지나가는 감정들을 그대로 잡아서 적어 놓는다.

잘잘못을 따지기 전에 내 마음이 지금 이렇다고 먼저 알려주는 시간.

어른에게도 이런 기분 사전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늘의 기분: 동료가 칭찬받는 걸 보고 조금 서운했어요. 나도 잘하고 싶어서 그랬던 것 같아요.

오늘의 기분: 아이 숙제를 도와주다가 참을성이 바닥나서 화가 났어요. 사실은 나도 너무 피곤해서 그랬어요.


이렇게 적어두면 질투는 ‘나쁜 마음’이 아니라, 나도 잘하고 싶다는 신호가 되고,

화는 ‘나쁜 엄마’의 증거가 아니라 이만큼 지쳤다는 표시가 된다.


감정은 잘못이 아니라 정보에 가깝다는 걸 아이의 노트가 먼저 알려주는 것 같다.


생각해 보면, 우리가 관계에서 힘들어지는 순간은 감정 그 자체 때문이기보다,

내가 느낀 감정을 끝까지 모른 척한 채 그 위에 판단을 덧칠할 때가 많다.


“저 사람을 보면 괜히 불편해.”

여기까지만 두지 않고

“그러니까 나는 못난 사람이고, 저 사람은 나를 무시하는 사람이고…”

이렇게까지 나아가 버릴 때.


만약 그 지점에서 아이처럼 기분 사전을 펼칠 수 있다면 조금 달라질지도 모른다.


오늘의 기분: 질투나요.

같은 팀 동료가 먼저 인정받는 것 같아 속이 쓰렸어요. 사실은 나도 인정받고 싶어서 그랬어요.


여기까지 쓰고 나면 상대방을 미워하는 마음보다

‘나는 어떤 방식으로 인정받고 싶지?’ 스스로에게 묻게 된다.


감정을 정확하게 보는 일이 나를 잃지 않는 첫 단계가 되는 셈이다.


아이의 ‘질투나요’는 자신을 탓하는 말이 아니라 지금 마음의 위치를 찍어 두는 점에 가깝다.

“나는 여기 서 있어요. 저 트로피가 부러워요. 그래서 마음이 이만큼 출렁여요.”


어른도 그렇게 말할 수 있다면 어떨까.

“나는 지금 여기에서 이만큼 지쳐 있고, 이만큼 부러워하고, 이만큼 애쓰고 있어요.”


당신이 이 글을 읽고 있다면 지금 당신의 기분을 한 단어로 적어 보는 건 어떨까.

“서운함”, “뿌듯함”, “질투”, “안도감”, “허탈함”…

어떤 단어라도 괜찮다.


그리고 그 옆에 짧게 한 줄만 더 붙여 보는 것이다.

“왜 그렇게 느꼈는지 내 편에서 설명해 보기.”


그 한 줄을 쓰는 동안만큼은 남과 비교하는 마음 대신 나를 이해하려는 마음이 조금 더 커진다.


오늘의 단어를 이렇게 적어 두고 싶다.

나의 기분.

하루를 견디느라 잊어버린 나를 잠깐 다시 불러 보는 작은 사전.


질투도, 서운함도, 기쁨도 모두 내가 무엇을 중요하게 여기는지 알려주는 표시들.


오늘 밤, 잠들기 전 아이의 기분 사전처럼 나만의 기분을 한 줄 써 볼 수 있다면 좋겠다.

그 문장이 당신이 당신을 잃지 않고 사람들과 관계를 이어 가게 해 주는 작은 점 하나가 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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