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장 나에게 쉬어가는 점(운동)

[오늘의 단어] 운동(몸을 움직여 마음을 쉬게 하는 시간)

[오늘의 단어] 운동(몸을 움직여 마음을 쉬게 하는 시간)


헬스장 한 번도 못 간 주에도, 사실 우리는 매일 운동을 하고 있다.

운동이라는 말을 들으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건 대개 부담이다.

헬스장 이용권, 닫혀 있는 러닝화, 새벽 기상 실패 기록...


“이번 주도 못 갔네.”

“나 진짜 의지가 너무 없다.”


일상을 조금 더 건강하게 만들고 싶다는 마음에서 시작했는데,

어느 순간부터 운동은 나를 또 한 번 평가하는 기준이 되어 버린다.

“운동을 안 했다”는 말 뒤에는 “또 못 지켰다”는 자책이 조용히 따라붙는다.


그런데 잘 들여다보면,

우리가 몸을 움직이는 순간마다 반드시 ‘성공한 운동’이 될 필요는 없는 것 같다.

하루 중 진짜 숨이 고르게 느껴지는 시간은 어쩌면 거창한 루틴보다 작은 움직임들 속에 숨어 있다.


점심 식사 후,

배가 너무 부르다며 괜히 자리에서 일어나 회사 주변을 한 바퀴 도는 시간.


누군가는 “소화 좀 시키고 올게요”라고 말하지만,

실은 머릿속을 잠깐 비우고 오고 싶은 마음이 더 클 때가 있다.


건물 앞 가로수의 잎 색이 계절마다 조금씩 달라지는 걸 보거나,

건물 유리창에 비친 내 모습을 슬쩍 훑어보거나,

차가우면서도 살짝 따뜻한 바람이 얼굴을 스치고 지나가는 느낌을 받으면서

조금 전까지 머릿속을 꽉 채우고 있던 업무 부담이 나도 모르게 뒤로 물러난다.


그 짧은 산책을 ‘운동’이라고 부르기엔 뭔가 부족한 것 같지만,

돌아와 자리에 앉으면 몸이 조금 풀려 있고 마음도 아주 조금은 부드러워져 있다.

기록에 남지 않는 움직임이, 사실은 내 삶을 제일 오래 지탱해 준다는 걸 이럴 때 문득 깨닫게 된다.


엘리베이터 대신 계단을 택하는 순간들도 있다.


“그냥 걸어서 올라갈게요. 17층이지만…”


한여름, 중간에 포기하고 싶을 만큼 숨이 막혔는데 되돌아갈 출구도 없어 결국 끝까지 올라간 날도 있었다.

그때 허벅지가 타는 것 같은 느낌과 “그래도 해냈다”는 묘한 뿌듯함이 함께 남아 있다.


숨이 약간 가빠지면서 허벅지가 묵직해질 때, 머릿속에 쌓여 있던 고민들이 잠시 자리를 내어준다.


딱 그 정도 힘듦이 좋다.

머릿속으로 복잡하게 계산하지 않아도 되고,

누군가의 눈치를 보지 않아도 되는, 오롯이 나의 숨소리만 들리는 시간.


계단을 다 오르고 난 뒤

“이 정도면 오늘 운동 한 번은 했다”라고 스스로에게 슬쩍 말을 건네면,

그 말이 생각보다 꽤 큰 위로가 되어 돌아올 때가 있다.


헬스장 출석률 대신,

“오늘 계단 한 층은 올랐다”는 사실로 나를 평가해 주는 일.


퇴근 후 집 근처를 한 바퀴 도는 저녁의 운동은 또 다르다.

하루를 버티고 나서야 겨우 집 앞을 걷고 있는 나를 발견하면, 문득 이상한 안도감이 든다.


“그래, 그래도 여기까지 왔네.”


가로등 불빛 아래 늘어선 자동차들, 편의점 앞 의자에 앉아 있는 사람들, 문 사이로 새어 나오는 TV 소리.


그 사이를 천천히 지나가며 오늘 있었던 일들을 하나씩 꺼내 보고,

내일 해야 할 일들을 멀찌감치에서 바라본다.


뛰어도 좋고, 그냥 걸어도 상관없다.

핵심은 속도를 내가 정할 수 있다는 것,

그리고 그 시간만큼은 누구의 메시지에도 바로 답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다.


어떤 날은 가족과 함께 집에서 가볍게 몸을 움직인다.

아이와 함께 매트 위에 누워 스트레칭을 하거나, 짧은 홈트 영상을 보면서 “하나, 둘” 소리를 맞춰 본다.


제대로 된 자세는 아닐지 몰라도 중간중간 툭 튀어나오는 아이의 웃음소리,

“엄마, 이건 내가 더 잘하는 것 같아”라는 엉뚱한 자랑,

마지막에 서로 손바닥을 탁 치고 “오늘도 했다!”라고 말하는 그 순간이 생각보다 오래 마음에 남는다.


열심히 운동했다는 기록보다

“오늘도 같이 움직였다”는 기억이 더 오래가는 날.


운동을 계속 시도하게 만드는 건 체중계 숫자가 아니라, 그 기억들인지도 모르겠다.


운동은 몸을 단련하는 시간이기도 하지만, 어른에게는 마음의 속도를 조절하는 시간에 더 가깝다.

멈춰 서 있을 수는 없어서 계속 앞으로 나아가야 하는 하루 속에서,

내가 선택해서 걷고, 오르고, 도는 몇 분.


그 몇 분 동안만큼은 “더 잘해야 한다”는 기준 대신

“그래도 여기까지 움직였네”라는 문장을 나 자신에게 허락할 수 있다.

누구에게 보여 줄 몸이 아니라, 내가 버틸 수 있는 마음을 위해 움직이는 시간.


점심시간에 이 글을 읽고 있다면, 오늘의 운동을 조금 다르게 정의해 봐도 좋겠다.

헬스장에 가지 못한 죄책감 대신 오늘 이미 움직인 몸의 순간들을 떠올려 보는 것.


아침에 지하철 계단을 올라온 시간,

식사 후 복도 끝까지 걸어갔다 온 시간,

퇴근 후 집 앞 골목을 천천히 돌아본 시간.


그 어느 것 하나도 ‘제대로 된 운동이 아니다’라고 지우지 않고,

“이것도 분명 오늘의 나를 지탱해 준 움직임이었다”고 조용히 인정해 주는 일.


오늘의 운동을 이렇게 적어 두고 싶다.


운동.

몸을 더 몰아붙이기 위한 벌이 아니라, 하루의 중간과 끝에서 마음을 잠깐 내려놓게 해 주는 움직임.

기록에 남지 않아도, 누가 칭찬해 주지 않아도,


“그래도 오늘, 여기까지는 몸을 움직여 봤다.”

그 문장이 당신의 오늘에도 작은 쉼표 하나로 남기를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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