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장 오늘과 내일 사이에 남기는 점(메모)

[오늘의 단어] 메모(오늘을 내일에게 살짝 넘겨 두는 한 줄)

[오늘의 단어] 메모(오늘을 내일에게 살짝 넘겨 두는 한 줄)


규칙적으로 글을 작성하기 시작하면서 특별한 습관이 하나 생겼다.

잠들기 전에 오늘의 글귀 하나를 골라, 그 문장을 안고 눈을 감는 일이다.


그 문장은 내일 업무의 제목이 될 수도 있고,

사람들과 주고받은 말들 중 자꾸만 떠오르는 한 줄일 수도 있고,

아이를 챙기면서 “이건 꼭 잊지 말아야지” 하고 마음속에 적어 둔 문장일 때도 있다.


종이 위에 쓰지 않아도, 메모 앱을 열지 않아도,

잠들기 직전 가슴 한가운데 살짝 올려 두는 오늘의 글귀 한 줄.

그게 요즘 나에게는 가장 마지막 메모다.


우리는 하루 종일 메모를 한다.

미팅 일정, 해야 할 일 리스트, 확인해야 할 숫자들,

아이 숙제와 행사 안내, 장 볼거리까지.


“내일 10시까지 보고서 초안”,

“3시 전에 꼭 전화하기”,

“우유, 계란, 초콜릿”.


이렇게 적어 놓지 않으면 금세 잊어버릴 것 같아서

틈만 나면 휴대폰을 열고, 노트를 펴고, 포스트잇을 붙인다.

할 일을 잊지 않기 위한 메모들은 필요한데,

어느 순간부터 메모장이 나를 돕는 도구라기보다 나를 재촉하는 목록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그래서 밤이 되면 다른 종류의 메모를 하나 더 남기고 싶어졌다.

내일의 업무를 정리하는 메모가 아니라, 오늘의 마음을 살짝 정리하는 메모.


“오늘 이 말은 조금 과했으니까 내일은 조금 더 천천히 말하기.”

“수고했다는 말, 꼭 건네고 싶었는데 못 했다. 내일은 먼저 말해 보기.”

“아이 숙제 잊지 않고 봐주기. 오늘은 미안했다고 꼭 안아 주기.”


이런 문장들은 업무 시스템에도, 캘린더에도 등록되지 않는다.

그렇지만 침대에 눕기 직전, 나와 내일의 나 사이에서만 오가는 조용한 메모가 된다.


어떤 밤에는 휴대폰 메모장에 빽빽하게 적힌 할 일들 사이에 한 줄을 더 끼워 넣는다.

“오늘, 이 문장 덕분에 좀 버텼다.”

누군가가 건넨 메시지, 오가는 대화 속에서 마음에 걸린 한 문장,

우연히 스친 글귀가 오늘의 마지막 메모가 되는 날도 있다.


그 문장을 지우지 않고 그대로 남겨 두면 다음 날 아침, 출근길 지하철에서 다시 읽게 된다.

그리고 생각한다.

‘그래, 어제의 나는 여기까지 생각하고 잠들었구나.’


메모의 좋은 점은 완벽하지 않아도 된다는 데 있는 것 같다.

계획처럼 정교할 필요도 없고, 보고서처럼 논리가 매끄러울 필요도 없다.

그저 “나는 오늘 이런 마음이었어”,

“내일의 내가 이건 조금 더 신경 써줬으면 좋겠어”라고 살짝 건네놓는 표시만 있으면 된다.


오늘의 나는 다 하지 못했지만,

그렇다고 완전히 놓아 버리고 싶지는 않은 것들을 내일에게 넘겨주는 작은 다리.

생각해 보면, 메모는 우리가 스스로에게 보내는 가장 짧은 편지 같기도 하다.


“오늘도 많이 애썼지?”

“그래도 이 부분은 꽤 잘했어.”

“여기서부터는, 내일의 내가 이어갈게.”


이런 말을 길게 쓰지 않아도 메모 한 줄이면 충분할 때가 있다.


오늘을 다 정리하지 못해도 괜찮다는 허용,

내일의 나를 조금은 믿어보겠다는 작은 신뢰가 그 한 줄 안에 조용히 숨어 있다.


점심시간에 이 글을 읽고 있다면 어젯밤의 당신은 어떤 메모와 함께 잠들었는지 떠올려 봐도 좋겠다.


혹시 아무것도 남기지 못하고 그냥 지쳐서 눈을 감았다면,

오늘 밤만큼은 아주 짧은 한 줄이라도 스스로에게 메모를 남겨 보면 어떨까.


“오늘 여기까지 온 나, 수고했다.”

“내일은 오늘보다 한 걸음만 더 가 보자.”

“지금은 많이 피곤하지만, 그래도 나는 계속 살아가고 있다.”


어떤 문장이든, 당신이 오늘 안고 잠들 수 있는 말이면 충분하다.


오늘의 메모를 이렇게 정의해 두고 싶다.


메모.

오늘을 완벽하게 끝내기 위한 체크리스트가 아니라, 내일의 나에게 살짝 건네는 마음의 한 줄.

하루를 다 쓰지 못한 채 남겨 둔 부분까지도 조용히 끌어안고 잠들게 해 주는 문장.


그 문장 하나가

오늘과 내일 사이에 찍히는 작은 점이 되어,

당신의 밤을 조금 덜 불안하게,

당신의 내일을 조금 더 가볍게 만들어 주기를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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