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장 일하는 사이에 숨겨진 점(확인 부탁드립니다)

확인 부탁드립니다(오늘의 나를 조심스럽게 내미는 말 한 한 줄)

[오늘의 단어] 확인 부탁드립니다(오늘의 나를 조심스럽게 내미는 말 한 줄)


가끔 이런 생각을 한다.


회사의 비공식 인사말은 “안녕하세요”가 아니라 “확인 부탁드립니다”일지도 모른다고.


아침에 자리에 앉자마자 메일함을 열면 이미 여러 통의 ‘확인 부탁드립니다’가 도착해 있다.

첨부파일과 정리된 표, 결재선과 참고 인원, ‘이상입니다’로 끝나는 단정한 문장들.


그 안에는 숫자와 보고서뿐 아니라 오늘의 나가 조금씩 섞여 들어 있다.

보내는 사람의 입장에서 보면, ‘확인 부탁드립니다’ 버튼을 누르기까지 꽤 많은 과정이 있다.


내용을 쓰고, 다시 맨 위로 올라가 처음부터 끝까지 한 번 더 읽고,

맞춤법을 고치고, 첨부가 빠지진 않았는지 몇 번이고 확인하고, 마지막으로 제목을 한 번 더 손본다.


그리고 나서야, 겨우, 마우스를 ‘보내기’ 위에 올린다.

사실 우리는 매번 파일을 보내는 척하면서 그 파일 사이에 슬쩍 이런 마음을 끼워 넣는다.


“오늘 저는 여기까지 정리해 봤습니다.”

“괜찮게 보였으면 좋겠습니다.”

“버리지 않고 한 번만 제대로 봐주세요.”


받는 사람의 입장에서 보면, 이 말은 또 다르게 다가온다.

하루 종일 메일함에는 각자의 ‘확인 부탁드립니다’가 쌓여 간다.


보고서, 정리본, 의견 요청, 일정 확인...

모두 다 중요해 보이는데 정작 오늘 내가 처리할 수 있는 시간과 에너지는 한정되어 있다.


그래서 우리는 얄팍한 우선순위를 만든다.


오늘 당장 위에서 물어볼 것 같은 일, 마감이 박힌 숫자, 팀 전체에 영향을 줄 만한 안건부터 먼저 연다.


그러다 보면 어떤 ‘확인 부탁드립니다’는 읽지 않은 상태로,

혹은 대충 훑어본 상태로 조금씩 아래쪽으로 밀려난다.


그리고 그 메일을 보낸 사람은 다른 자리에서 이렇게 생각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혹시 내 메일, 너무 사소해 보였나?’

‘내 의견은 굳이 답할 필요가 없다고 느낀 걸까?’


30·40대의 회사 생활은 대부분 이 두 입장이 동시에 겹치는 시기일 것이다.


같은 날, 우리는 위로도 ‘확인 부탁드립니다’를 올리고, 아래에서도 ‘확인 부탁드립니다’를 받는다.


한쪽에서는 “잘 정리했네요”라는 말을 듣고 싶고,

다른 한쪽에서는 “빠른 회신 부탁드립니다”라는 문장에 나도 모르게 숨이 가빠진다.


생각해 보면 ‘확인’이라는 말속에는 여러 층의 의미가 숨어 있다.


내용이 맞는지 확인해 달라는 뜻,

방향이 틀리지 않았는지 점검해 달라는 뜻,

무엇보다 “내가 괜찮은지 한 번만 봐 달라”는 마음.


그래서 어떤 날의 ‘확인 부탁드립니다’는

그냥 하나의 업무 메일이 아니라 오늘의 나를 조심스럽게 내미는 인사에 가깝다.


문제는, 우리 모두가 바쁘다는 것이다.

보내는 사람도, 받는 사람도, 각자의 자리에서 이미 치열하다.


그래서 ‘확인 부탁드립니다’는 말이 어떤 날은 예의 바른 표현으로 남지만,

어떤 날은 서로를 지치게 만드는 문장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그래서 요즘은 이 말의 무게를 조금 다르게 나눠 보고 싶어진다.


보내는 사람에게는,

“이건 내 삶의 전부가 아니라 오늘 내가 할 수 있었던 최선의 한 조각이다.”

라고 마음속에 조용히 적어 두는 것.


받는 사람에게는,

“이 메일 뒤에도 한 사람이 숨을 고르고 있을지 모른다.” 라는 사실을 아주 잠깐 떠올려 보는 것.


낮시간 이 글을 읽고 있다면, 오늘 당신도 이미 몇 통의 메일과 메신저를 주고받았을 것이다.


어쩌면 오전 내내 ‘확인 부탁드립니다’를 쓰다가

다른 누군가의 ‘확인 부탁드립니다’를 제때 확인하지 못해 마음이 찜찜했을지도 모른다.


그럴 때 이렇게 한 번 정리해 보는 건 어떨까.


오늘 내가 보낸 ‘확인 부탁드립니다’ 중에는 정말로 내 마음을 담아 보낸 말이 몇 개였는지.


그리고 오늘 내가 받은 ‘확인 부탁드립니다’ 중에는

단순한 업무가 아니라 한 사람의 용기가 조금 섞여 있을지도 모르는 말이 몇 개였는지.


우리는 매일 파일을 주고받는 듯 보이지만,

조금만 들여다보면 그 속에는 “오늘의 나, 확인 부탁드립니다”라는 마음이 함께 들어 있다.


틀렸는지 맞았는지만 묻는 게 아니라,

버려지지 않고 한 번은 제대로 읽히기를 바라는 마음.


오늘의 단어를 이렇게 적어 두고 싶다.


확인 부탁드립니다.

업무를 끝내기 위한 형식적인 문장이 아니라, 오늘의 나를 함부로 지나치지 말아 달라는 조심스러운 부탁.


그리고 그 부탁을 들은 사람도 자신만의 속도로 숨을 고르며 다른 누군가에게 또 이렇게 말하고 있을 것이다.

“오늘도 여기까지 정리해 본 나를, 부디 너무 가볍게 보지 말아 주세요.”


이 글을 다 읽고 난 뒤 오늘 들어온 메일들 중 하나를 열어 조금 더 천천히 읽어 볼 수 있다면,


그리고 언젠가 당신이 보내는 ‘확인 부탁드립니다’가 누군가에게

“그래, 오늘의 너를 잘 받았다”라는 조용한 승인으로 돌아오기를 바란다면,


그 마음 자체가 이미 일하는 사이에 찍힌 작은 점 하나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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