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광, 사라진 후 내게 남은 것들>
4부 투명한 선 I <미세누수>
선을 세우는 법을 배웠는데도
살다 보면 무너지는 건 큰 사건이 아니라
아무도 눈치채지 못할 만큼 작은 틈에서 시작되더라고요.
말 한 마디, 표정 하나,
지나간 뒤에야 뒤늦게 남는 피로.
나는 그걸 ‘상처’라고 부르지 않으려 합니다.
다만, 하루가 새는 소리-
그 미세한 누수를 점검하고 싶습니다.
오늘은 그 이야기를 적어둡니다.
단정함이 닳지 않게,
내 안의 힘이 새지 않게.
<미세누수>
누수는
항상
작게 시작된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말이 지나간 자리,
표정이 스친 자리,
웃음이 너무 얇았던 자리.
젖어드는 줄 모르고
하루를 접는다.
피로는
울지 않는다.
조용히
새어 나온다.
한 방울의 “그 정도쯤”
한 방울의 “괜찮지”
한 방울의 “원래 그래”
그런 문장들이
마음을 조금씩 얇게 만든다.
큰 소리로 무너지지 않는다.
그게 품위인 줄 알았는데
어느 날
손끝이 먼저 알아차린다.
자꾸 미끄러지는 걸.
그래서 점검한다.
너무 많이 참은 곳,
너무 빨리 웃은 곳,
너무 늦게 닫은 문.
틈을 막기 위해서가 아니다.
인정하기 위해서다.
새는 마음을
죄로 만들지 않기 위해서.
느리게
나를 향해 돌려본다.
물건처럼,
하루처럼,
사람처럼.
그리고
한 번 더 정돈한다.
마지막으로
남은 것을 확인한다.
아직 쓸 수 있는 숨,
남겨둘 수 있는 온도,
그리고
누군가의 친절이
비탈지지 않게
받아낼 수 있는
각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