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장 일하는 사이에 숨겨진 점(혹시)

[오늘의 단어] 혹시(부탁을 최대한 작게 줄여서 꺼내는 말)

제3장 일하는 사이에 숨겨진 점(혹시)

[오늘의 단어] 혹시(부탁을 최대한 작게 줄여서 꺼내는 말)


회사에서 내가 자주 쓰는 단어를 꼽으라면, 아마 '혹시'일 것이다.

상대방이 당연히 해야 하는 일이라는 걸 알면서도, 눈앞에서 바빠 보이면 손가락이 먼저 이렇게 움직인다.


“혹시 이거 오늘 안에 확인 가능할까요?”

“혹시 이 부분도 같이 봐줄 수 있어요?”


사실 '혹시'는 없어도 되는 말이다.

업무로만 보자면, 그저 “오늘 안에 확인해 주세요”면 충분하다.

그런데 나는 자꾸 그 앞에 '혹시'를 습관처럼 붙인다. 바쁜 기색이 보이면 특히나 더 그렇다.


그 마음은,

지금 부탁하는 게 미안해서, 그래도 이건 해야 해서, 좀 더 다정하게 들렸으면 해서, 그래서 시작된 것인데.

아이러니하게도,

이렇게 '혹시'를 붙여 말문을 열다 보면, 상대방의 일이던 것이 어느새 내 일로 넘어와 있는 순간이 생긴다.


“혹시 힘들면 제가 조금 도와줄게요.”

“혹시 일정이 안 되면, 일단 초안만이라도 제가 만들어 볼게요.”


결국 그날 야근을 하는 건 나였고,

상대방 입장에서는 ‘내가 해도 되는 일인데 팀장이 양해를 구하는 느낌’이 남는다.

배려하고 싶어서 쓴 단어가 책임의 경계를 흐리는 말이 되어 버릴 때가 있다.


반대로, 내게도 이런 메시지가 자주 온다.


“혹시 오늘 중에 이 내용 한 번만 봐주실 수 있을까요?”

“혹시 지금 미팅 가능하세요?”


나는 이 '혹시'에 숨어 있는 마음을 안다.

“당신도 바쁜 거 아는데, 그래도 이 부탁을 해야만 해서 조심스럽게 말을 꺼내요.”


그래서일까. 웬만해서는 '혹시'로 시작하는 부탁을 잘 거절하지 못한다.

업무시간이 이미 지나 있어도, 오늘은 그냥 쉬고 싶다고 마음먹은 날이어도,

'혹시…'로 시작하는 메시지를 보면 손가락이 먼저 이렇게 답한다.


“네, 괜찮아요. 보내 주세요.”


어쩌면, 대부분 서로 비슷할 것이다.

'혹시'라는 단어를 쓰는 사람도, 그 메시지를 받는 사람도.

'혹시'를 붙이는 쪽은 자기 부탁의 크기를 최대한 작게 줄여 보려고 한다.


“이거 원래는 말씀드리기 미안한데요…”

“지금이 아니면 안 되는 건 아닌데요…”


그 긴 설명을 한 단어에 욱여넣어서 보내는 것.


받는 쪽은 안다. 그 말이 얼마나 고민 끝에 나온 말인지.

그래서 괜히 더 성의 있게 답하게 된다.


사전에서 ‘혹시’를 찾아보면 '그럴지도 모름, 만일 그렇게 된다면' 같은 뜻이 나온다.


하지만 회사에서 오가는 '혹시'는 조금 다른 의미를 품고 있는 것 같다.


“당신이 바쁠지도 모른다는 걸 알아요. 그래도 이 얘기는 당신과 나누고 싶어요.”

일과 사람 사이, 업무와 마음 사이에 조심스럽게 깔아 두는 완충재 같은 말.


문제는 이 단어가 너무 습관처럼 붙기 시작할 때다.

해야 할 말, 해도 되는 요청, 분명한 책임과 역할까지도 전부 '혹시' 뒤로 숨겨 버리면,

나중에는 누가 무엇을 맡는 게 맞는지 경계가 흐릿해진다.


“혹시 괜찮으면 이것도 해줄 수 있어요?”라고 말해놓고 정작 상대가 안 해도 크게 말하지 못하는 상황.

내가 업무를 부탁하면서 먼저 미안한 사람이 되어 버린 순간, ‘이 일의 주인’은 애매해진다.


그래서 요즘은 스스로에게도 이렇게 묻곤 한다.

“지금 이 ‘혹시’는 상대를 배려하는 단어일까, 아니면 내 할 말을 줄이는 단어일까.”


업무 지시와 협업 요청은 사실 분명한 문장이 더 필요하다.

“이건 당신의 업무예요. 당신이 해야 합니다.”

“이 부분은 제가 맡을게요. 이건 도와주실 수 있을까요?”

역할이 분명해야 나중에 억울함도 덜하고, 서로의 수고가 어디서부터 어디까지인지도 보이니까.


대신,

정말로 마음이 쓰이는 순간에 쓰는 '혹시'는 충분히 오래 남았으면 좋겠다.


“혹시, 오늘 컨디션이 안 좋아 보여요. 괜찮으세요?”

“혹시, 이 일 때문에 너무 혼자 고민하고 있는 건 아니죠?”


이런 '혹시'는 업무가 아니라 사람을 향해 있다.

상대의 시간을 빼앗는 부탁이 아니라 상대의 마음 곁에 잠깐 서보겠다는 신호에 가깝다.


하루 동안 나에게 도착하는 수많은 메시지 중에서,

정작 이런 '혹시'는 금방 지나가 버리지 않게 마음에 한 번 더 담아 두고 싶다.


“혹시 시간 되세요?”라는 말 뒤에는 대충 이런 문장이 숨어 있을지도 모른다.


“당신이라면 이 얘기를 들어줄 것 같아서요.”

“당신 의견이 필요해서요.”

“당신이라서 부탁해요.”


그걸 알고 나면, 내가 보내는 '혹시'도, 내게 오는 '혹시'도 조금 다르게 들린다.


최근에 주고받은 메시지를 한 번 떠올려 봐도 좋겠다.


내가 쓴 '혹시'는 어떤 마음에서 시작되었는지,

누군가가 보낸 '혹시'는 어떤 용기를 내어 건넨 말이었는지.


그리고 이런 기준을 나만의 원칙으로 살짝 정리해 보는 것이다.


해야 할 일, 분명한 책임 앞에서는 괜히 '혹시'로 스스로를 줄이지 말기.

대신, 누군가가 힘을 내서 보낸 '혹시'에는 한 번쯤 더 귀 기울여 보기.


오늘의 단어를 이렇게 적어 두고 싶다.


혹시.

거절을 예상하면서도 부탁을 포기하지 못할 때 꺼내는 단어.


나 자신을 줄이기 위해서가 아니라, 서로를 조금 더 배려하기 위해 쓸 수 있다면,

회사라는 풍경 속에서 오가는 '혹시'라는 말도 조금 덜 지치고, 조금 더 따뜻하게 들릴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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