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장 오늘과 내일 사이에 남기는 점(소등)

[오늘의 단어] 소등(하루를 끝내는 가장 단순한 결정)

제4장 오늘과 내일 사이에 남기는 점(소등)

[오늘의 단어] 소등(하루를 끝내는 가장 단순한 결정)



하루가 끝나는 방식은 의외로 단순하다.


소등.

거창한 결심도, 대단한 정리도 아니라 그저 불을 끄는 일.


집 안의 불이 하나둘 꺼지고 나면

그제야 오늘이 정말 끝났다는 사실이 몸으로 내려온다.


퇴근하고 잠들기 전까지는 생각보다 많은 일을 한다.


가방을 내려놓고, 옷을 갈아입고, 식사를 하고, 집안일을 하고,

밀린 메시지를 훑어보고, 내일 일정을 떠올린다.

그 사이사이에 오늘 있었던 일들이 끼어든다.


조금은 아쉬웠던 말, 괜히 마음에 남은 표정, 그때는 넘겼는데 자꾸 떠오르는 장면.

우리는 그렇게 오늘을 끝내는 대신 오늘을 한 번 더 반복하기도 한다.


그래서인지 소등은 늘 마지막에 남는다.


아직 할 일이 남아 있어도,

오늘의 대화가 머릿속에서 끝나지 않았어도,

내일이 걱정되어 마음이 먼저 출근하고 있어도.


불을 끄면 일단 멈춘다.

적어도 ‘눈으로 보는 세계’는 멈춘다.


아마도 그래서

소등은 하루를 끝내는 가장 단순한 결정이면서

가장 필요한 결정인지도 모른다.


불을 끄기 전, 멈칫하는 순간에는 오늘 하루가 더욱 선명해진다.

“오늘도 별일 없었지.” 하고 넘기려다 사실은 별일이 많았다는 걸 떠올린다.


제대로 마무리하지 못한 일 하나,

누군가에게 제대로 전하지 못한 마음 하나,

그리고 그 와중에도 어쨌든 오늘을 여기까지 데려온 나.


소등은 ‘다 끝냈다’는 표시가 아니다.

오히려 반대다.

다 끝내지 못했어도 이제 그만하기로 하는 표시다.

하루를 마무리하기 위한, 아주 단순한 결정.


오늘을 완벽하게 정리하지 못해도

그 상태 그대로 내일에 넘겨도 괜찮다고 스스로에게 허락하는 일.


가끔은 소등을 해도 머릿속은 그대로 켜져 있을 때가 있다.

분명 불은 꺼졌는데 생각은 꺼지지 않는다.


서로 오간 문장들이 다시 재생되고,

내가 하지 못한 말이 뒤늦게 떠오르고,

‘내일은 더 잘해야지’라는 마음이 이불 밖으로 고개를 내민다.


그럴 때 나는 잠들기 전에 이런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져 본다.

“지금 이 생각은 내일의 나를 돕는 생각일까, 아니면 오늘의 나를 괴롭히는 생각일까.”


대부분의 경우,

우리가 밤에 붙잡고 있는 걱정은

내일을 준비시키기보다 오늘을 다시 벌점 주는 것에 더 가깝다.


그래서 요즘은 소등과 함께

아주 짧은 문장을 하나 더 붙여 보려고 한다.


“오늘은 여기까지.”


더 멋진 말도, 더 근사한 결론도 필요 없다.

그 문장 하나면 스스로를 조금 덜 몰아붙일 수 있다.


그리고 내일 아침,

다시 불을 켜는 건 내일의 내가 하면 된다.


어젯밤의 당신도 소등 앞에서 잠깐 멈춰 섰을지도 모른다.

아직 해야 할 일이 떠올랐고, 마음이 정리되지 않았고, 그래도 결국은 불을 껐다.


그 결정 하나만으로도 어제의 당신은 꽤 잘했다.

하루를 더 끌고 가지 않기로 한 사람은 자기 삶의 리듬을 지키려는 사람이다.


소등.

하루를 끝내는 가장 단순한 결정.

완벽하지 않은 오늘이라도 이만하면 됐다고 말해 주는 방식.


불이 꺼진 깜깜한 방 안에서

오늘의 나를 더 몰아세우지 않고

그저 “수고했다”라고 한 번만 말해 줄 수 있다면,

내일은 생각보다 조금 덜 무거운 얼굴로 다시 시작될지도 모른다.


수고했다.

오늘의 당신도, 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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