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광, 사라진 후 내게 남은 것들>
5부 고요 l <고요>
<고요>
선을 세운 뒤
세상과 멀어지지는 않았다.
다만
먼저 가지 않게,
하루의 밝기와 소리를
낮추는 법을 배웠을 뿐.
알림은 겹치고
말은 겹치고
마음은 그 사이에서
얇아지려 한다.
모든 것을 지우지 않고
소리만 줄여본다.
필요한 소리만 남기고
흘려보낸다.
흘려보내는 게
하루의 능력이라 믿어보면서.
여전히 하루는 바쁘고
여전히 할 일은 많지만
버틸 수 있다.
불빛 하나만 남겨두면
방은 곧 넓어진다.
고요는 비어 있던 것이 아니라
돌아오는 자리였다는 걸
이제는 안다.
고요는
도피가 아니라
복원이다.
회복이다.
나는 오늘을
고요히 넘긴다.
세상과 끊기기 위해서가 아니라
내 안 누수가 커지기 전
숨이 다시 제자리에 오도록.
문을 닫으면
어둠이 곧장 오지 않듯
낮춘 소리들 사이로
빛은 늦게 와서
조금 더 오래 머무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