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가는 왜 항상 누군가를 아프게 하는가

평가제도와 마음 사이의 거리

열여덟 번째 이야기

<평가는 왜 항상 누군가를 아프게 하는가>

- 평가제도와 마음 사이의 거리


연말이면 회사 메일함에는 비슷한 제목이 올라온다.


“인사평가지 작성 안내”

“평가 입력 기한 공지”

...

그리고 그날부터 사무실 공기는 조금씩 달라진다.

사람들은 숫자를 입력하지만, 그 숫자 뒤에는 언제나 사람의 마음이 묻어 있다.


1) 엑셀 한 줄, 마음 한 줄


평가 시즌이 되면 HR은 수많은 엑셀 파일을 연다.

이름, 직급, 목표, 달성률, 등급.


한 장의 시트 안에서 사람들은 A, B, C로 나뉘고

‘기대 이상’과 ‘기대 충족’, ‘개선 필요’로 분류된다.


겉으로는 담담한 숫자 작업이지만 나는 안다.

엑셀의 한 줄이 바뀔 때마다 어디선가는 누군가의 마음도 같이 움직이고 있다는 것을.


“올해도 겨우 B구나.”

“나는 왜 항상 이 정도일까.”


평가는 점수가 아니라 자기 자신에 대한 문장으로 받아들여진다.


2) 평가는 성과를 재는 도구가 아니라, ‘가치 판단’으로 느껴진다


사람들은 평가를 통해 “내가 일을 얼마나 잘했는가”를 알고 싶어 하기도 하지만,

그보다 더 깊은 차원에서는 “내가 이 조직 안에서 어떤 사람으로 보이는가”를 묻고 있다.


그래서 같은 B등급이라도 누군가에겐

“올해도 고생 많았다, 내년엔 같이 한 번 더 밀어보자”라는 신뢰의 신호가 되고,

다른 누군가에겐 “넌 이 정도 사람이야”라는 라벨처럼 찍힌다.


연구에서는 평가를 공정하다고 느끼는 사람일수록 조직에 머물고자 하는 의지가 높고,

불공정하다고 느끼는 사람일수록 퇴사를 더 자주 고민한다고 한다.


우리는 숫자를 매기지만, 사람의 마음은 그 숫자를 “나라는 사람에 대한 판단”으로 받아들인다.


3) 제도가 마음을 아프게 만드는 순간들


HR을 하다 보면 평가 제도가 사람을 아프게 만드는 장면을 너무 많이 보게 된다.


강제 분포 때문에 팀 전체가 잘해도 누군가는 반드시 낮은 등급을 받아야 할 때

프로젝트의 성격상 수치로 드러나기 어려운 일을 한 사람이 “근거가 부족하다”는 이유로 평범한 평가를 받을 때

중간에 조직장이 바뀌면서 일 년 내내 함께 고생한 상사가 아닌 ‘새로 온 리더’가 평가를 눌러버리는 순간


이때 사람들은 이렇게 느낀다.


“내가 열심히 한 건 아무 상관이 없구나.”

“결국 구조와 사람 눈치가 점수를 정하는 거네.”


너무나 당연한 말이지만, 한 병원 연구에서는

평가를 공정하다고 느낄수록 직원들의 동기와 업무 몰입이 유의미하게 높아진다고 한다.


즉, 제도가 공정하지 않다고 느껴지는 순간 사람들은 ‘더 잘하자’가 아니라 ‘여기서 얼마나 버틸까’를 먼저 고민한다.


4) HR의 자리에서 본, 평가가 남기는 두 개의 상처


인사 업무를 하면서 느끼는 건 평가 시즌이 남기는 상처가 대부분 두 가지 모양이라는 점이다.


①“나는 이 정도 사람이구나”라는 자기 낙인

몇 년째 비슷한 등급을 받은 사람은 어느 순간 노력의 수위를 스스로 낮춘다.

“해봤자”라는 말이 입 밖으로 나오기 시작하면 그 사람의 마음은 이미 반쯤 떠난 것이다.


②“내 노력은 보이지 않는구나”라는 관계의 상처

야근과 주말을 갈아 넣었는데 하나의 코멘트 없이 점수만 내려왔을 때,

“너 아니어도 돌아가”라는 메시지처럼 들리기도 한다.


흥미로운 건, 사람들이 꼭 ‘높은 점수’를 원해서 아픈 게 아니라는 것이다.


많은 직원들이 면담에서 말한다. “차라리 이유라도 알고 싶어요. 뭘 잘했고, 뭘 못했는지라도요.”

사람들은 점수보다 자신의 일과 마음이 제대로 읽혔는지를 알고 싶어 한다.


5) 제도와 마음 사이의 거리를 줄이려면


평가가 완벽해질 수는 없다. 그러나 평가가 조금 덜 아프게 만들 수는 있다.

조직과 개인, 두 방향 모두에서.


①평가자가 할 수 있는 일

· 과정까지 기록하고 인정하기

- 결과뿐 아니라 과정에서의 기여를 문서와 피드백에 남겨야 한다.

· 강제 분포의 사용을 최소화하기

- 어쩔 수 없이 쓰더라도 그 이유와 기준을 투명하게 설명해야 한다.

· 평가를 ‘연 1회 행사’가 아닌 ‘대화의 연속’으로 만들기

- 연말 한 번의 면담이 아니라 분기·월 단위의 짧은 피드백 루틴을 만드는 것만으로도 상처의 강도는 크게 줄어든다.


연구들에 따르면 평가의 절대 수준보다 공정성, 설명, 피드백의 질이 몰입과 성과, 이직 의도에 더 큰 영향을 미친다.


②피평가자가 할 수 있는 일

· 점수와 ‘나 전체’를 분리해서 보기

- 올해의 점수는 ‘이 환경에서, 이 조건으로’ 나온 결과일 뿐 나라는 사람 전체의 가치가 아니다.

· 내가 한 일을 나 스스로 먼저 정리해 두기

- 프로젝트 시작과 끝, 기여 지점, 배운 점을 스스로 기록해 두면 평가 대화에서 내 서사를 잃지 않게 된다.

· 피드백을 요구하는 연습

- “이번 평가에서 제가 더 잘할 수 있었던 부분이 뭐였나요?” 이 한 문장을 꺼낼 수 있을 때 평가는 조금씩 덜 일방적이 된다.



평가는 사람을 나누기 위한 도구가 아니라,

사람이 더 나아지기 위해 서로를 읽어 내는 과정이어야 한다.



#성과평가 #조직문화 #직장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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