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 번아웃 직전 리더에게 필요한
‘한 칸 물러섬’

지치지 않고 오래 가기 위해 꼭 비워야 하는 것들

by 삶을 읽는 조직문화연구자 이지연

25. 번아웃 직전 리더에게 필요한 ‘한 칸 물러섬’

– 지치지 않고 오래 가기 위해 꼭 비워야 하는 것들


어느 순간 그런 날이 온다.


퇴근길 지하철 창문에 비친 내 얼굴이 너무 낯설게 느껴지는 날.
주말에 종일 누워 있었는데도, 월요일 아침에 눈을 뜨면 몸이 돌덩이처럼 무거운 날.


“그냥 좀 피곤한가 보다”라고 넘기려다가도, 속으로는 알고 있다.

이건 단순한 피로가 아니라, 천천히 타 들어가고 있는 상태에 가깝다는 걸.


나도 번아웃을 여러 번 겪었다.

한 번 바닥까지 갔다 오면, 회복까지 시간이 꽤 오래 걸린다는 것도 몸으로 배웠다.

그래서 이제는 “번아웃이 오지 않게 버티는 법”보다

“번아웃 직전에 한 칸 물러서는 법”을 더 열심히 연습하려고 한다.


특히 초보 리더일수록, 회사에서 마주치는 갈등과 감정에 휘말려

“내가 진짜 이루고 싶었던 일”보다 “지금 눈앞의 감정”에 더 많은 에너지를 쓰게 된다.


이 글은

“감정을 무시하고 일만 하자”는 이야기가 아니라,

“지금 이 순간, 어디에서 한 칸쯤은 물러나야 오래 갈 수 있을까”를


같이 고민해보자는 제안에 가깝다.




1. 번아웃은 어느 날 갑자기 오지 않는다 – 이미 울리고 있었던 신호들

번아웃을 떠올리면 종종 극단적인 장면을 상상한다.

아침에 갑자기 몸이 안 움직인다든가, 회사 앞에서 눈물이 터져서 도저히 들어갈 수 없는 장면 같은 것들.


그런데 실제 번아웃은 대부분 훨씬 조용하게 온다.

조금만 돌아보면, 이미 여러 신호들이 먼저 지나갔다는 걸 알게 된다.


예를 들면 이런 것들이다.

메일 제목만 봐도 한숨이 먼저 나오는 날이 길어졌을 때

작은 피드백에도 과하게 예민해지거나, 반대로 아무 감정이 안 느껴질 때

주말에 쉬고 돌아와도 “그래서 뭐가 회복된 거지?” 싶은 공허함만 남을 때

예전에는 흥미롭던 프로젝트인데도 “그냥 일거리”로만 느껴질 때


리더 입장에서는 이런 신호도 있다.

팀원의 고민을 듣고 나면 “저 사람 이야기”보다 “또 하나의 처리해야 할 이슈”로 느껴질 때

성과와 숫자만 눈에 들어오고, 사람 얼굴과 이름은 흐릿하게 느껴질 때

내가 왜 이 일을 처음 시작했는지를 떠올리려고 하면, 이상하게 머리가 하얘지는 순간들


번아웃은 어느 날 갑자기 폭발하는 사건이 아니라,

그 전에 “작은 나 자신”들이 계속해서 사라지는 과정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번아웃 직전 리더에게 필요한 건 대단한 힐링 프로그램보다,

이 사라짐을 인지하고 “한 칸 물러서는 용기”일 때가 많다.




2. 리더가 특히 번아웃에 취약한 이유 – ‘나라도 혼자 버텨야지’의 함정

리더들은 번아웃 이야기를 할 때도 자주 이렇게 말한다.

“제가 힘들다고 말하면, 팀원들은 어떻겠어요.”
“위에서는 방향을 밀어붙이고, 아래에서는 힘들다고 하는데… 나라도 중간에서 버텨야죠.”


겉으로 보면 책임감 있고 든든한 말이다.

하지만 이 마음이 조금 지나치면, 리더는 아주 위험한 자리에 서게 된다.


위에서 내려오는 압박, 아래에서 올라오는 감정, 이 두 가지를 모두 내 몸으로 흡수하는 “쿠션” 같은 자리.

판은 그대로 둔 채, 나 혼자 더 단단해지려는 자리.


그러다 보면 하루 대부분을 “사람 감정”과 “갈등”을 처리하는 데 쓰게 된다.

정작 내가 목표한 일, 팀과 함께 만들고 싶었던 변화, 내 커리어를 다음 단계로 옮기기 위해 필요한 고민은 뒤로 밀려난다.


회사에서의 고민이 “이 일을 어떻게 더 잘 완성할까?”보다

“저 사람한테 뭐라고 말해야 덜 상처 줄까?”에 거의 다 쓰이기 시작하면, 리더의 에너지는 금방 바닥이 난다.


갈등과 감정을 다루는 건 리더의 중요한 역할이지만, 그게 리더십의 전부는 아니다.

문제는, 번아웃 직전에는 이 둘이 뒤섞여 보인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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