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일찍 어른이 된 아이들의 마음에 대하여
여덟 번째 이야기
너무 일찍 어른이 된 아이들의 마음에 대하여
나는 가끔 어린 시절의 나에게 말을 걸어본다.
회사에서 버티다 지치는 날이면
지금의 내가 아니라
중학생 시절의 내가
내 어깨를 툭 건드리는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괜찮아. 너는 이미 오래 버텨온 아이였어.”
1) 전단지 꾸러미를 들고 걸어가던 골목
내 첫 벌이는
월급봉투도, 통장에 찍히는 숫자도 아니었다.
손에 들린 전단지 한 꾸러미였다.
방과 후, 친구들이 떡볶이를 먹으러 갈 때
나는 낡은 운동화를 끌며 아파트 단지 사이 골목으로 들어갔다.
바람이 불 때마다 전단지가 흩날릴까 양손으로 꼭 누르며 걸었다.
몇 장을 집어넣었는지도 모르는데 손끝이 까끌까끌하게 닳아 있었다.
가난은 사람을 나쁘게 만들지 않지만,
조금 더 빨리 걸어가게 하긴 한다.
2) 너무 일찍 어른이 된 아이들의 마음
일찍 어른이 된 아이들은 세상을 배우기 전에 먼저 책임을 배운다.
먹고 싶은 걸 참는 법
하고 싶은 것보다 해야 하는 걸 고르는 법
“괜찮아요”를 먼저 말하는 법
아픈 날에도 빠지지 않는 법
철든 아이처럼 보였지만
사실은 철들지 않을 선택지가 없었던 아이였다.
그 시절의 나는
누군가가 “힘들지?”라고 물어봐 주기만 해도
버틸 힘이 생겼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질문은 오지 않았다.
그래서 더 세게, 더 빨리 버텼다.
3) 전화기 너머의 목소리들
전단지 알바보다 조금 더 ‘어른 같은 일’은
곶감집 텔레마케터였다.
좁은 작업실에 박스가 켜켜이 쌓여 있고,
곶감 향이 은은히 퍼지던 겨울.
나는 여고생이면서도
귀에 전화기 헤드셋을 걸고
어른의 목소리를 흉내 내며 말했다.
“안녕하세요 고객님, 주문 도와드릴게요.”
양손은 키보드 위에 놓였고,
귀에는 헤드셋이 걸려 있었고,
나는 마치 오래전부터 이 일을 해온 사람처럼
담담한 말투를 배워나갔다.
수화기 너머의 목소리는
친절한 사람도 있었지만,
날카롭거나, 피곤하거나,
그날의 기분을 그대로 전하는 사람도 있었다.
전화를 끊고 나면
귀가 축 처지고,
헤드셋을 벗은 귀 주변이
뜨겁게 달아올라 있었다.
그때 나는 세상에선 감정까지도 노동이 된다는 걸 배웠고,
어른이 되기 전부터
이미 그 감정노동을 시작한 사람이었다.
4) 가난·책임·생계가 만드는 ‘가속된 성장’
인사업무를 하면서 깨달았다.
너무 일찍 어른이 된 사람들은 회사에서도 비슷한 속도로 산다.
일이 몰리면 알아서 챙기고
실망시키지 않으려고 발버둥 치고
누군가의 눈빛을 먼저 살피고
감정은 뒤로 미뤄둔 채 오늘을 견딘다
이들의 ‘착함’은 기질이 아니라 살아남기 위한 기술이었다.
어린 시절에 배운 그 빠른 속도와 긴장감은
어른이 된 지금까지 몸 안에 깊게 남아 있다.
5) 너는 잘못된 속도로 살고 있는 게 아니다
이 글을 읽는 소년·소녀가장이었던 너에게,
지금 취업 준비로 마음이 무거운 너에게
이 말을 전하고 싶다.
너는 잘못된 속도로 살아온 게 아니다.
그저 살아내야만 했던 속도로 하루하루를 버텨왔을 뿐이다.
너는 부족하지 않았다.
단지, 너무 많은 것을 혼자 감당해야 해서 잠시 멈출 틈이 없었을 뿐이다.
남들이 겪지 않은 무게를 너는 어린 나이에 먼저 견뎠고,
그 무게를 들고도 끝까지 걸어왔다.
그래서 너는 느린 사람이 아니다.
오히려 자신의 나이보다 훨씬 먼 길을 이미 걸어온 사람이다.
그런 사람은
조금 뒤처져도 괜찮고,
조금 돌아가도 괜찮다.
어차피 너는 이미
너만의 방식으로
너무 많이, 너무 잘 버텨왔다.
그리고 버틴 사람에게는
언젠가 반드시 ‘펼쳐지는 순간’이 찾아온다.
너는 그 순간을 충분히 누릴 자격이 있는 사람이다.
너는 부족해서 늦은 게 아니다.
그저 너무 일찍, 혼자 강해져야 했던 사람일 뿐이다.
그렇기에 너는 반드시 다시 일어날 힘을 가진 사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