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함으로 버티던 사람들의 조용한 피로에 대하여
일곱 번째 이야기
- 선함으로 버티던 사람들의 조용한 피로에 대하여
회사 사람들은 종종 말한다.
“저 사람은 참 착하네.”
“누가 봐도 좋은 사람이지.”
칭찬처럼 들리는 이 말이 왜 가끔은 마음을 무겁게 만드는지 나는 어느 순간부터 알게 되었다.
‘좋은 사람’이라는 말 속에는 말하지 못한 고단함이 숨어 있기 때문이다.
1) 늘 양보하고, 조심하고, 배려하던 한 사람
함께 일하는 동료가 말했다.
“팀장님… 가끔은 저도 쉬고 싶어요.”
그 직원은 늘 조심스럽고 성실했다.
조직에서 ‘좋은 사람’의 표본처럼 보였다.
하지만 그의 말투에는 오랜 억눌림이 배어 있었다.
그는 누구보다 일을 잘하고,
분위기를 편하게 만들어주고,
갈등이 날 것 같으면 먼저 자신을 낮추는 사람이었다.
그러나 그런 사람일수록 정작 가장 많이 무너진다.
착함으로 해결해 온 모든 순간이 스스로를 조금씩 닳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2) 회사는 왜 ‘좋은 사람’을 좋아할까
회사 입장에서 좋은 사람은 “편한 사람”이다.
부탁하면 거절하지 않고
일이 몰리면 알아서 감당하고
말투를 부드럽게 다듬고
갈등을 피하고
분위기 때문에 참아주고
감정까지 스스로 정리해온다
그래서
착함은 능력이 되고,
헌신은 습관이 되고,
책임감은 당연해진다.
문제는 그 수고가 평가에서 사라진다는 것이다.
좋은 사람이 되려 했던 마음은 선함이 아니라 생존이었던 경우가 많다.
미움받기 싫어서가 아니라, 무너지면 안 되기 때문에.
3) 착함·책임·헌신이 어떻게 자기소모로 이어지는가
착한 사람들은 보이지 않는 노동을 많이 한다.
①감정 조율
누군가 불편해하는지 미리 살피고 자신의 감정은 뒤로 밀어두는 노동.
②업무의 번들링
“저 사람은 잘하니까.”
“저 사람은 부탁하면 들어주니까.”
이런 말 뒤에 숨은 과업 증가.
③관계 관리
말 한 번을 할 때에도 상대가 상처받지 않도록 문장을 다듬는 노동.
이 모든 노동을 좋은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해낸다.
그리고 누구보다 먼저 지친다.
4) 내가 ‘착한 노동자’였던 시간
나는 오랜 시간 회사에서 ‘좋은 사람’이었다.
조직 분위기를 먼저 챙기고,
동료들이 어려워하면 스스로 일을 맡고,
내 몫을 덜고 남의 몫을 더 했다.
하지만 싱글맘이 된 이후, 나는 비로소 깨달았다.
내가 착해서 그런 게 아니라,
실패할 여유가 없어서 좋은 사람이었음을.
누군가 실망하면 안 될 것 같아서,
혹시 나를 싫어하면 내 세계가 무너질까 봐,
나를 좋은 사람으로 보이는 것이
내 삶을 지탱하는 유일한 방식인 줄 알았다.
그러나 그 방식으로는 아무도 나를 지켜주지 않는다는 걸 몸으로 배웠다.
5) 선함을 잃지 않되, 나를 잃지는 말아야 한다
착함은 미덕이다.
하지만 자기 희생이 되는 순간,
그 미덕은 칼날이 된다.
양보는 품격이다.
하지만 항상 내 차례가 뒤로 미뤄진다면
그건 품격이 아니라 소진이다.
배려는 성숙함이다.
하지만 나를 상처 입히는 배려는
더 이상 배려가 아니다.
선함은 너의 힘이다.
하지만 너를 잃는 방식으로 쓰여서는 안 된다.